서울에서 대전까지 걸어가는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길을 기대했지만, 막상 걷게 된 길 위는 상상과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마주해야 했던 건 동물의 사체들이었습니다. 인간이 타고 다니는 차에 치였거나, 인간이 놓은 약을 먹었거나, 인간이 먹기 위해 가두고 죽였거나…. 모두 인간 때문에 죽은 동물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썩어가는 동물의 사체보다 이제까지 제가 살아온 삶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뉴 트롤리 딜레마’는 내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오늘 당장 죽어가는 것들을 세상의 가장자리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쓰게 된 글입니다.
아낌없는 축하를 건네주신 이주영 선생님, 고연옥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 시작을 지켜봐 주신 박세미 선생님, 그리고 늘 제 편이 되어주시는 박규남 선생님 역시 감사드립니다.
늘 든든하게 제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함께 걸어가며 모두와 오래도록 행복 하고 싶습니다.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식을 단 한 번도 막아선 적이 없는 부모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그 믿음과 응원을 연료 삼아 쓴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모든 행복과 행운의 원천, 희연에게 선명한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만약 딜레마에 정답이 있다면 그건 ‘영원한 고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딜레마에 빠지게 되더라도, 성실하게 고민하며 오래오래 쓰겠습니다.
△1996년 광주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심사평 시대 따라 몸부림치듯… 희곡도 변해야
어쩌면 과거처럼 서슬 퍼렇게 시대를 관통하거나 일갈한다거나 하는 작품은 이제 없고, 오히려 시대가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희곡도 몸부림치며 변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극작가의 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맑게 일어난 새로운 정신까지는 아니겠지만 쓸고 닦고 문지르며 닦아낸 세상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중요하다. 극작술이 현란하다고 해서 할 말을 잘하고 있다 착각하진 말자. 또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전달될 거라는 생각도 자제하자. 대신 뚜렷이 보고 진화된 언어가 작동하도록 섬세하게 운용하자.
올해 역시 도시빈민, 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때론 토로로, 때론 사회구조 진단과 함께 드러났다. 또 글쓰기의 어려움이 사회의 난맥상과 함께 몸을 섞으며 여전히 나왔다. 희곡에서도 미래 소재 서사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그러나 동시대 문제를 짚는 서사는 연일 매체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그 이상을 넘어서진 못했다.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낙원에서’, ‘양지의 식사’, ‘리노의 호수’, ‘404 not found’, ‘고래의 기억’, ‘아빠가 돌아왔다’, ‘청춘의 밤’, ‘가방 안에 사는 남자’가 호명됐다. “***씨의 선택이 그 알고리즘을 만든 거라면요?”라는 상징대사 하나로 미래 서사를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로 구축한 ‘뉴 트롤리 딜레마’에 힘을 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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