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많은 글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당선 소감을 쓰기 위해 역시나 많은 당선 소감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나는 소감을 말할 게 아니라, 고해를 해야 하겠다.”
저는 영화학도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영화와 거리를 두며 지냈습니다.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조금 소홀히 하듯이 영화적 글쓰기를 멀리하고 다른 동네의 문을 심심찮게 두드렸습니다. 이번 신춘문예도 비슷합니다. 이곳저곳을 서성이며 나의 자리가 있는지 노크했습니다.
돌아간 어깨를 다시 돌려준 것은 시나리오였습니다. 영화학도인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신춘문예가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그 수고로움에 죄송합니다. 시나리오를 끼고 서서, 두드렸던 문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들이 채워준 시적 감수성, 동화적 상상력, 소설의 체급은 아직 제 몸 어딘가에 붙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영화학도일 테지만, 그들을 털어버리지 못할 것을 알고 또 한 번 사과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났고, 앞으로 만날 여러 문파의 선생님들께 계속 어정뜬 위치 어딘가에 머물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 죄송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글쓰기의 바다에 표류하면서 선생님과의 만남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지근거리에서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선생님이 되는 것을 자처해준, 원주의 돌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끝으로 내 언급은 언제 나오나 기대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지면을 핑계 삼아 통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게 돼 죄송합니다. 그 대신 이 말을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러뷰 올(Love you all). △1985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 영상시나리오과 졸업
● 심사평 기생충-미나리처럼… 수준 높아진 작품들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수준이 높아졌음을 느낀 심사였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국영화와 콘텐츠의 저력을 전 세계에 떨치고 있는 만큼 재능 있는 작가들의 도전은 반가웠다. 당선작을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보통은 심사위원들이 자신이 선정한 한 편의 작품을 동시에 외치면 대부분 같은 작품이라 서로 보는 눈이 비슷하다며 웃곤 했는데 올해는 달랐다.
그렇지만 공통의 교집합은 ‘새사람’이었다. ‘새사람’은 지금의 감염병 시대 분위기가 반영돼 있는 새로운 히어로물로 캐릭터 창작능력과 대사감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국민을 우롱하는 권력층에 대한 묘사, 권언유착을 날카롭게 꼬집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빛과 그림자를 다루는 점도 좋았다. 구성이 다소 혼란스럽고 결말의 개연성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는데 이야기의 재미와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과 성소수자의 역할 바꾸기를 다룬 응모작 ‘드랙’은 소재에 비해 풀어나가는 방법은 다소 평이한 아쉬움이 있지만 단순한 재미만이 아닌 깊이 있는 주제가 돋보였다. 60대 아들이 40대 초반의 젊은 엄마와 보내는 사흘간의 꿈같은 여정을 그린 ‘배론’은 담백하고 문학적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내외하는 모자지간이 다소 어색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 차를 뛰어넘는 모자지간의 기류가 형성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실제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정의사회구현’도 영화적이며 매우 잘 쓴 시나리오였다. 다만 사실에 픽션을 가미할 때는 실제 인물을 미화시키지 않는 신중함이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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