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문예공모전’ 연구 손동호 교수
1923년 동아일보 일천원 현상문예, 단편소설-동화 등 16개 부문 모집
일제강점기 사회비판 목소리 담아…1925년 시작 신춘문예, 작가 등용문
당선작들 식민지 삶 실상 고발
“내가 이렇게 빨리고 살 수가 있나?”
한 조선인이 침통한 표정으로 하소연하고 있다.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이 그의 몸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빨고 있다. 일본, 중국, 서양의 경제 침탈에 신음하던 1920년대 조선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린 것. 동아일보 1923년 5월 26일자 2면에 실린 1000호 기념 현상 당선 만화 ‘이렇게 빨리고야’는 일제강점기에도 강력한 현실 비판을 담았다.
이보다 하루 전인 5월 25일자 2면에 실린 당선 만화 ‘작작 짜내어라’에서는 한 소작인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입에서는 돈이 쏟아지고 있다. 무슨 일일까. 답은 소작인의 목을 쥐어짜고 있는 지주의 손에 있다. 조선총독부의 토지 정책으로 인해 곤경에 빠진 소작농의 어려움을 비판한 만화다.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42)가 최근 출간한 연구서 ‘동아일보의 독자 참여제도와 문예면의 정착’(소명출판)에 나오는 내용이다. 손 교수는 3일 전화 인터뷰에서 “동아일보는 1923년 5월 25일 1000호 발간을 기념해 독자들이 작품을 응모하는 ‘동아일보 일천호 기념 상금 일천원의 대현상’을 열었다”며 “조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아 민족지로서 정체성을 강화하고 총독부 정책에 대한 노골적 비판을 담았다”고 밝혔다.
1920년 4월 창간한 동아일보는 이듬해인 1921년 ‘독자 문단’을 통해 일종의 문학 소통창구를 마련했다. 독자들이 투고한 소설이나 시를 지면에 실어 호응을 얻었다. 시조시인 조운(1900∼1948), 소설가 한설야(1900∼1976), 시인 유도순(1904∼1938) 등 일제강점기 국내 문단에서 활약한 대표 문인들이 독자 문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독자 문단이 인기를 끌자 동아일보는 1923년 1000호 기념 현상문예를 열었다. 단편소설, 동화, 시조 등 모집 부문이 16개나 됐다. 일제강점기 상황을 비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주로 담았다. ‘현금정치의 엄정비판’ 부문은 관권 남용이나 감옥제도와 경찰의 문제점을 다뤘다.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라 응모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 투고가 가능했다. 손 교수는 “현상문예 당선작들은 사회 문제를 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1925년 시작된 동아일보 신춘문예도 독자를 ‘작가’로 만드는 등용문으로 문단 형성에 기여했다는 게 손 교수의 분석이다. 당시 ‘부인계’ ‘소년계’ 등으로 나눠 작품을 모집했고 이는 문단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손 교수는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은 노동자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실 문제를 다루고 식민지 삶의 실상을 고발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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