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말 11집 ‘Waking World’ 발매
홀로 편곡-컴퓨터 프로그래밍 “내가 그린 음표 고스란히 연주”
둔중한 드럼-주술적 가사 등 점철
재즈보컬 나윤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실종된 그 자리에 다크 팝(dark pop) 여전사가 귀환했다.
환각적 기타 잔향, 둔중한 드럼, 주술적 가사로 점철된 11집 ‘Waking World’(28일 발매 예정)는 나 씨 스스로도 “거의 재데뷔작(作)”이라고 보는 신작이다. 팬데믹 탓에 세계적 연주자들과 만날 길이 막히니 그가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새 세계가 열렸다. 6일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작·편곡 소프트웨어) ‘로직(Logic)’을 독학했어요.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의 곡을 오빠(프로듀서 ‘피니어스’)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해부하면서요. 아일리시의 곡에 리버브(잔향 효과)와 이퀄라이저(주파수 조절)를 어떻게 적용했는지 익힌 뒤 제 나름대로 변형해 보기도 하며 편곡과 음향 제작을 연습해나갔죠.”
때로 세상의 종말까지 거침없이 노래하는 이 신곡 11개는 따라서 코로나19 상황이 만든 미적 ‘괴수’라 봐도 좋다. 아일리시, 아그네스 오벨(덴마크), 라나 델 레이(미국) 등 음울한 팝을 부르는 전 세계 가수는 이제 절창까지 겸비한 이 재즈 디바와 일전을 치러야겠다.
모든 곡의 모든 음표를 나 씨가 직접 설계한 음반은 그로서는 처음이다. 그는 “전작들에선 내가 짜둔 화성의 얼개를 개별 연주자들에게 맡겨 즉흥성을 덧댔지만 이번엔 내가 애당초 악보에 그린 음표가 고스란히 연주됐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기타도 독학했다. 미국 밴드 너바나의 뒤틀린 발라드를 연상시키는 ‘It‘s OK’는 나 씨가 처음 기타로 지은 노래.
편곡과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그가 도맡았지만 스피커 양쪽으로 울창한 침엽수림을 완성해 넣은 프랑스와 벨기에 연주자들의 공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여성 관악주자 에렐 베송과는 나윤선 1집(‘Reflet’·2001년) 이후 오랜만의 재회. 나 씨가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두 차례나 받으며 유럽의 디바가 되는 사이, 베송도 프랑스 음악의 승리상을 받으며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했다.
“‘Round and Round’ ‘Don’t Get Me Wrong’에서는 베송의 트럼펫과 플뤼겔호른 연주를 분신술처럼 중첩시키고 일부 디지털로 변형해 관악단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Heart of a Woman’은 고(故)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영국)의 ‘Back to Black’ 뮤직비디오의 상복(喪服)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했다.
나 씨는 이달 27일 프랑스 몽펠리에를 시작으로 6월까지 유럽과 미주 순회공연에 나선다. 그는 “신곡은 모두 3분 정도로 짧지만 무대에서는 긴 즉흥연주로 재즈적 매력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무대에는 해외 일정이 끝나는 12월에야 선다. 세계적 스타를 우리는 잠시 놔줘야 한다. 그러나 디바는 되레 더 겸손해졌다.
“이제야 제 민낯을 보여드리는 듯해 떨립니다. 앞으로 이런 음반 10장 더 만들면 그제야 자신이 생길 것 같아요. ‘두 번째 11집’쯤 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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