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명품 브랜드 가문 추락시키는 파트리치아의 파란만장 삶 그려
레이디 가가, 눈빛 강도까지 조절… 상류층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 풍부
스크린에 옮겨진 세계적인 브랜드 ‘구찌’ 가문 이야기는 긴장감이 넘친다. 청부 살인과 구찌 가문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뻔히 아는데도 결말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올해 85세의 노장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표본을 남기겠다며 작정하고 만든 모양새다.
영화는 1970년대 이탈리아 밀라노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20대 여성 파트리치아로 분한 팝의 아이콘 레이디 가가는 파티에서 패션계의 왕족 구찌 가문의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를 보자마자 반해 버린다. 마우리치오 역시 저돌적이지만 귀여운 파트리치아에게 푹 빠진다.
마우리치오의 아버지로, 구찌 가문의 역사 그 자체인 로돌포(제러미 아이언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도 못 알아보고 “그림 정말 비싸겠다”고 말하는 파트리치아를 탐탁지 않아 한다. 소규모 트럭운송사업을 하는 집안의 딸이고, 돈을 노리는 것으로 보이는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것투성이다. 결국 마우리치오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 허락도 없이 결혼식을 올린다. 구찌 가문의 비극이 움트는 순간이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20대의 파트리치아가 구찌 집안에 입성한 뒤 변해가는 모습이다. 사랑스럽고 순수했던 그는 남편을 부추겨 구찌를 차지하려는 탐욕으로 일그러진다. 마우리치오의 삼촌이자 구찌 최고경영자 알도(알 파치노)와 알도의 아들인 파울로(재러드 레토)의 지분을 빼앗으려 거짓말과 이간질에 공권력 동원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가는 20대부터 40대의 파트리치아를 모두 다른 사람처럼 연기한다. 눈빛의 강도까지 조절하며 한 사람이 괴물이 돼가는 과정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순수한 여성에서 희대의 악녀로 바뀌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가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스타 이즈 본’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는 배우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결국 이혼당한 그가 선보인 광기 어린 연기는 압권이다. 가가는 이탈리아 북부 출신인 파트리치아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식 영어 억양을 6개월간 연습했다. 살을 찌우고 실제 파트리치아가 살던 이탈리아 지역 곳곳을 다니며 그녀에 대해 취재하는 열의를 보였다.
알 파치노와 그의 아들 파울로로 분한 레토가 서로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연기 대결은 영화관에서 박수를 치고 싶게 만들 정도다. 과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가 이들을 수상자로 선정한 데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러닝타임은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요즘 추세에 역행하는 158분에 달한다. 구찌 가문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구찌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어간 1990년대까지의 장대한 서사를 속도감 있게 압축해 긴 시간이 금세 간다. 명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대결이 몰입감을 높이는 데다 최상류층의 화려한 의상, 1980년대 뉴욕의 명품 패션쇼, 로마 뉴욕 알프스의 저택과 휴양지 등 볼거리가 풍부해 158분이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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