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끌 만한 책, AI가 판단해 발주량 정하고 재고 확보까지
별다른 특징 없던 동물책, 신간 판매량 상위 8% 들어
AI 예측 판매량, 85% 적중…장르-전문성-사회상 등 반영
교보문고, 상반기 시행 예정 “기존 시스템보다 40% 정확”
지난해 1월 출간된 에세이 ‘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책공장더불어)는 대형 출판사나 유명 저자가 낸 책이 아니다. 번듯한 추천사도 없고, 마케팅에 특별한 공을 들이지도 않았다. 출판계 통념대로면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질 법한 책이었다. 그러나 도서 수요예측 인공지능(AI)의 판단은 달랐다. 출간 직후 4주간 41권이 팔린다고 예측한 것. 줄거리와 저자 정보, 가격, 페이지 수 등 여러 정보를 분석한 결과였다. 실제 이 책은 출간 후 4주간 35권이 팔렸다. 이는 교보문고에서 팔리는 신간 중 상위 8% 안에 드는 판매량이다. 약 85%의 정확도로 판매량을 예측한 것이다.
AI가 이 책의 판매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예상한 근거는 무얼까. 동물 책 전문 출판사가 펴낸 데다 앞서 2권의 관련 책을 낸 저자 이력에 주목했다. 전문성에 중점을 둔 것. 고정 독자층이 확보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박성혁 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도서 수요예측 AI 시스템의 작동 과정을 살펴보면 독자가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출간된 책은 총 6만5792종. 어떤 게 독자 입맛에 맞을지 예측해 적당한 재고를 확보하기란 매우 어렵다. 교보문고가 올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지난해 4월부터 도서 수요예측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다.
AI 분석 과정은 이렇다. 먼저 책값, 분량, 저자 정보, 줄거리 등 기본적인 서지 정보를 AI에 입력한다. AI가 표지 이미지도 인식해 책의 매력도를 평가한다. 신진호 교보문고 상품기획팀장은 “AI를 하루 동안 학습시킨 결과 새 시스템이 기존 자동발주 시스템에 비해 도서 수요예측 정확도가 40%가량 높았다”며 “AI는 학습을 반복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만큼 기능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동발주 시스템은 월별 판매량을 기준으로 특정 책의 추가 주문 물량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새로 나온 책은 주문할 수 없고, 이미 나온 책을 대상으로 한다.
AI 분석 결과로 볼 때 어떤 책이 독자의 사랑을 받을까. 지난해 1월 출간된 경제경영서 ‘공간이 고객을 만든다’(무블출판사)는 언뜻 평범한 마케팅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AI는 이 책이 출간 후 4주간 68권이 팔릴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 78권이 나갔다.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이 공간 관리에 관심이 높아진 것을 AI가 포착했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중편소설집 ‘단 하나의 이름도 잊히지 않게’(에오스)의 공저자 3명 가운데 유명 소설가는 없다. 하지만 AI는 이 책이 출간 후 4주간 103권이 팔릴 것으로 봤고 실제 73권이 팔렸다.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최근 장르문학 흐름을 반영한 것. 여성의 옆모습을 담은 표지 디자인도 시선을 끌 것으로 분석됐다.
AI의 예측 정확도는 월 판매량이 5000부 이상인 이른바 ‘대박’ 신간보다는 100부 안팎의 ‘중박’ 책에서 높았다. 지난해 1월 출간된 심리학서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갤리온)에 대해 AI는 출간 4주간 204권이 팔릴 것이라 내다봤지만 출간 4주간 2024권이나 판매됐다. 대박 책은 서지 정보 등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정치, 사회 이슈나 출판사 마케팅에 영향을 받아 탄생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독자의 눈길을 끄는 표지 디자인을 AI 시스템이 만드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어떤 책이 독자의 취향에 맞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독서인구가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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