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지각할 각오까지 하고 라디오 청취자 음악퀴즈에 참여해 따낸 특급호텔 숙박권. 수정은 서울이나 제주도의 특급호텔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 하지만 하필 자신이 살고 있는 부산의 호텔 해운대라니. 음악퀴즈는 노래 ‘제주도 푸른 밤’으로 내고 왜 호텔은 자신이 살고 있는 부산의 특급호텔인가.
실망도 잠시, 부산 특급호텔이라도 공짜로 1박에 조식까지 호캉스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도 감지덕지다. 부산의 작은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는 수정은 호캉스를 위해 평일 연차까지 냈다. 주말 숙박은 추가 비용을 내야 하니 형편이 빠듯한 20대 사회초년생에겐 부담이고 부산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남자친구 민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려니 뜻하지 않은 걸림돌이 또 있었다. 거기에 만만찮은 호텔 식당 가격까지, 두 사람의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표제작 ‘호텔 해운대’부터 나머지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은 대부분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익숙한 부산의 지명과 사투리는 지역색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서울과 지방의 격차라는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선입견을 꼬집는다.
“부산에도 출판사가 있어요? 출판사는 다 서울이나 파주에 있는 줄 알았는데.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이었다. (중략) 회사명 하나로 제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땅의 콜라 역사를 바꾸기 위해 태어난 815콜라의 가치와 의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815콜라가 코카콜라나 펩시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방대 출신의 사회초년생, 비정규직, 실업, 성폭력 등 우리 삶과 가까이 있는 문제도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호텔 해운대의 이야기도 젊은 커플의 ‘좌충우돌 특급호텔 숙박기’ 같은 시트콤이 아닌, 우리 사회의 20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적인 모습들을 담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우가 행정직 9급 공무원이 되어도 5성급 호텔에 편하게 올 수는 없을 것이다. 민우도 매달 카드 값에 힘들어할 거고, 퇴직과 이직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월요일이 오면 꾸역꾸역 출근을 하겠지. 우리가 쥘 수 있는 건 서로의 마른 손이지 호텔 카드키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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