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일과 육아를 하면서 부모를 돌본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5일 03시 00분


◇일하는 딸/리즈 오도넬 지음·이상원 옮김/330쪽·1만6000원·심플라이프

조선시대 선비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삼년상을 지냈다. 1년이나 5년이 아니라 왜 하필 3년간 상을 지냈을까. 여러 설이 있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이 3년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3년이면 아기가 걷고 말하고 기초적인 의사표현 정도를 할 수 있는 기간이다. 부모가 3년간 자식을 극진히 보살폈으니, 자식 된 도리로 부모의 죽음을 3년 동안 애도해야 한다는 논리. 현대사회에서 삼년상은 사라졌지만 부모 봉양의 의무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겠다는 복지국가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여전히 육아와 부모 봉양의 주체는 가족이다.

이 책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던 여성 저자가 부모 돌봄까지 도맡으며 벌어진 일을 담은 에세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마케팅 전문가이자 활발한 저술, 강연활동을 해오던 저자에게 언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 어머니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아버지는 치매가 진행 중이었다. 저자는 두 언니 대신 막내인 자신이 부모 돌봄을 맡기로 한다. 일은 일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감당해야 하는 중에도 대소변 처리, 청소, 빨래, 병원 예약, 우편물 챙기기, 장례 준비 등 아픈 부모를 위한 일들은 끝없이 밀려온다.

저자는 돌봄 제공자에 대한 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간다. 돌봄은 대개 형제자매 중에서도 자식이 없거나 일하는 시간이 적은 사람이 그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돌봄 제공자에게는 헌신, 두뇌, 능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이를 모두 갖춘 이는 대개 꽉 찬 삶을 살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이 결국 돌봄까지 떠맡게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부모도 이 점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을 돌볼 사람으로 저자를 선택한다. 이 대목을 고려하면 제목에 왜 굳이 ‘일하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는지 이해가 간다.

병원, 요양시설, 호스피스 시설을 거치고서야 저자는 부모와 작별할 수 있었다. 그는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통과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돌봄이란 피할 수 없다. 특히 현대사회는 예전처럼 형제, 자매가 여럿이 아니니 우리들 대부분이 부모 돌봄을 맡아야 할 시기가 올 테다. 이 책은 돌봄이라는 과업을 통과해야 하는 어른들을 위한 조언으로 채워져 있다. 마케팅 전문가답게 돌봄을 동기부여, 일정관리, 선택과 집중, 의사결정이라는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가족 한 명에게 막대한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현재 사회의 문제와 개선을 위한 제언도 덧붙였다. 일과 육아의 병행에 관한 고민이 일과 부모 돌봄의 병행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져야 하는 시기에 소중한 책이다.

#일#육아#워킹맘#부모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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