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로마도 국력이 가장 흥할 때 조각이 융성했습니다. 이제 ‘K-조각’ 차례입니다.”
서울 여의도, 뚝섬, 반포 등 3개의 한강공원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각각 100점 씩 총 300개의 조각품들로 수놓아졌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77)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전국 조각가들을 한데 모아 한강을 ‘지붕 없는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종전의 야외 조각전 최대 기록인 호주 본다이비치 해안조각전(111점)보다 2.7배 큰 세계 최대 규모였다.
13일 반포한강공원에서 만난 윤 회장은 잠수교 기둥부터 산책로까지 줄지어 진열된 작품들을 일일이 가리키며 작가의 이름과 재료, 왜 그 자리에 배치했는지 이유를 막힘없이 설명했다. 칼바람에 체감온도가 영하 14도까지 떨어졌지만 조각품을 자식처럼 자랑하는 은발 도슨트의 목소리는 떨림없이 우렁찼다.
그는 “한강은 교양 있는 관람객과 석양, 조명, 주차장은 물론 아름다운 강변과 도심 경관까지 갖춘 세계 하나 뿐인 전시관”이라며 “전세계인들에게 ‘한강 하면 조각’ ‘조각 하면 한강’이 떠오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석 달간 윤 회장이 진두지휘한 ‘K-SCULPTURE(조각) 한강 흥 프로젝트’는 15일 막을 내렸지만 서울시는 2024년까지 3년간 한강공원 11곳의 상설 순회 조각전을 이끌어달라며 크라운해태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윤 회장이 조각 전시장으로 한강을 낙점한 이유는 ‘공간’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경기 양주시에 무료 작업실을 제공하며 조각가들을 후원해온 윤 회장은 올초 코로나19로 전시공간을 잃은 조각가들을 위해 군부대가 이전한 빈터에서 100~150점 규모의 조각전을 기획했다. 가뭄에 단비같은 전시 소식에 전국에서 하루 만에 50점이 모이자 최대한 많은 조각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300점으로 판을 키웠다.
팔도의 조각품을 모으기 위해 수백대의 화물차가 동원됐다. 크기도 형태도 각양각색인 전시품을 기준 없이 도열해놓으니 현장은 공사판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윤 회장은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손수 작품 배치에 나섰다. 차량 진행방향과 운전자 시선, 강변과의 구도, 잔디밭에 앉는 시민과 보행자의 눈높이까지 고려해 적재적소에 자리를 잡아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진을 찍는 행렬로 조각품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재배치를 위해 조각품을 옮기려고 하면 벌써 철수하냐며 항의하는 시민도 여럿이었다.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던 조각가들도 자신의 작품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르고 호응이 잇따르자 다시 작품 활동의 열정을 되찾았다.
사실 이번 전시전은 올 9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Frieze)를 겨냥한 전초전 같은 행사였다. 윤 회장은 “9월 한강 특별전시는 프리즈 기간 내한한 세계적인 작가 콜렉터 갤러리 등 예술계 인사들에게 자연스럽게 K조각을 소개하는 가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르면 올해 일본 등 세계 주요국과 조각전시 교류전을 본격화해 3년 후엔 한강에서 세계 조각전(W-SCULPTURE)을 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 회장은 인터뷰 내내 “삶과 예술과 산업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크라운해태의 대표 제품인 쿠크다스의 ‘초콜릿 물결 문양’‘, 오예스의 ’장미 박스‘ 등 과자에 예술을 접목하자 매출이 이전보다 30~50% 늘었다. 직원들도 각각 국악, 시, 조각을 배워 각종 예술무대에 서고 있다. 윤 회장은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처럼 랜드마크 조각품 하나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 금속조각의 핵심인 철판변형 기술 토대가 조선업인 것처럼 산업이 예술을 이끌거나 반대로 에펠탑 같은 대형 예술프로젝트가 침체된 산업계의 활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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