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 전략 펼치는 참모와 원칙주의자 후보의 애증 담아
빛과 그림자 대비 연출 돋보여
실제 DJ 역할 설경구
“현대사 거목 연기하려니 큰 부담… 감독에 극중 이름 바꾸자고 요청”
‘네거티브 원조’ 엄창록 역 이선균
“전쟁과 같은 선거판 다룬 이야기… 특정인 미화했다는 생각 안 들 것”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전남 목포. 야당인 신민당 김운범 후보(설경구) 관계자들이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의 지휘 아래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한다. 이들은 앞서 여당 후보가 주민들에게 나눠준 와이셔츠 등을 거둬들인다. 이른바 ‘줬다 뺏기’. 여당 후보에 대한 민심은 급격히 악화된다. 김 후보 측은 거둬들인 물품에 ‘신민당’ 문구를 새긴 뒤 주민들에게 다시 나눠주며 표를 얻는다. 서창대가 짜낸 각종 전략에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명연설이 더해져 김운범은 3선에 성공한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킹메이커’는 김운범과 그의 곁에서 기상천외한 선거 전략을 펼치는 서창대의 이야기를 다룬 정치 드라마다. 김운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을, 서창대는 ‘선거판의 여우’로 불린 전략가 고 엄창록 씨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설경구는 18일 인터뷰에서 “DJ는 누구나 아는 존경받는 인물이어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컸다”며 “극 중 이름도 원래 실명 그대로였는데, 변성현 감독에게 바꾸자고 계속 요청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의 큰 뼈대는 실화를 옮겨왔다. 당내 비주류 김운범은 서창대의 전략에 힘입어 1970년 신민당 경선에서 주류 김영호를 꺾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실제 제7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YS와 DJ의 경선을 바탕으로 했다. 여기에 엄창록의 승리 전략과 당내 뒷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내 영화적 긴장감을 살렸다. 설경구는 1960, 70년대 당시 DJ의 연설 제스처는 물론이고 특유의 말투까지 적절히 모사해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재창조했다. 그는 “모사만 할 순 없는 노릇이어서 나와 DJ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했다”고 했다.
서창대는 선거에서 김운범을 수차례 승리로 이끌지만 번번이 그와 부딪친다. 서창대는 대의를 이루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이겨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인물. 반면 김운범은 정도(正道)를 고집해 그와 대립한다. ‘독재 타도’란 큰 목표는 같기에 손을 잡지만 이들의 동행에는 늘 불안함이 도사린다.
김운범에게 빛을 비추는 반면 서창대는 어둠에 갇힌 것처럼 표현해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하는 등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대선 후보 경선 당일 각 후보 진영의 치열한 심리전과 심리적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삼각 계단을 배경으로 대화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감각적인 미장센도 눈에 띈다. 약 50, 60년 전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같은 연출력 덕분에 세련미가 넘친다.
다만 서창대의 다소 원초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김운범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려지는 등 영화가 DJ와 진보 진영을 미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DJ의 정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논란은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후반부에 청와대 ‘이 실장’(조우진)의 대사를 통해 여야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교적 합리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 이 실장은 서창대를 향해 “당신의 대의가 김운범이면 나의 대의는 각하”라고 말한다. 이선균은 “영화는 선거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보신다면 누군가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