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이런 구전이 있다. 19세기 말 여인 한 명이 센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센강을 지키던 하천경비대원이 여인의 시신을 건져내 병원으로 옮겼는데, 영안실 직원이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에 매료돼 몰래 데스마스크(죽은 자의 안면상)를 떴다. 매끄러운 피부, 살짝 감긴 두 눈과 긴 속눈썹, 그리고 신비한 미소…. 여인의 온화하고도 고운 마스크는 금세 유명해져 ‘센강의 모나리자’로 불렸다. 많은 복제품이 제작돼 파리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파리 예술계 인사들의 집을 장식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센강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온 ‘데스마스크’ 구전이 소설로 재탄생했다. 독자들이 “이 작가 신작이 나오면 1년이 지났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하는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기욤 뮈소(47)의 신작이다. 뮈소는 20년 가까이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매년 한 권의 소설을 내고 있다. 그를 페이지터너(재미있어 책장을 넘기게 하는 책)로 불리게 한 ‘그 후에’ ‘구해줘’, 드라마나 영화화돼 익숙한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아가씨와 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번 책은 그가 한국에서 18번째로 출간하는 장편소설이다.
뮈소는 센강의 이름 모를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스릴러 장르로 변주한다. 그의 소설 속 여인은 익사 직전에 구조된다. 질문을 해도 기억을 잃은 상태라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이 여인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몰래 도망친다. 한편 특이사건국(BANC)으로 전출된 록산 몽크레스티앙 경감은 계단에서 떨어져 입원한 마르크 바타유 국장을 대신해 이 사건을 맡는다. 그는 이 사건에서 예사롭지 않은 냄새를 맡고, 강력계 자리로 돌아갈 기회라 생각해 비공식적으로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그는 여인이 잠시 머물던 간호 공간을 찾아 머리카락과 소변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여인의 이름은 밀레나 베르그만. 독일 출신의 유명 피아니스트였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일 년 전 사망한 인물이다. 일 년 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항공기에 탑승했던 그녀는 추락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한 것. 당시 담당 경찰은 사망자들의 유전자 검사를 철저히 진행하고 신원 확인도 마무리한 만큼 오류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기이한 사건의 실마리는 뜬금없는 한 기사였다. 몽크레스티앙 경감은 비행기 사고 후 1년이 지났을 즈음, 베르그만의 열애설이 실린 잡지를 발견한다. 베르그만의 애인은 작가 라파엘 바타유. 공교롭게도 몽크레스티앙 경감의 전임자였던 마르크 바타유의 아들이었다. 몽크레스티앙 경감은 정신병원에 들어가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는 라파엘을 힘겹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묻는다. 왜 라파엘은 자신의 거취를 숨기는가? 항공기 사고에서 사망한 사람이 베르그만이 맞을까? 뮈소가 꾸려놓은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추격전을 따라가다 보면 한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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