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류학회지 논문 발표 “출토 당시 봉황으로 여겼지만
훨씬 길고 휘어진 부리 특이… 여럿이 있는 점도 따오기 유사”
日강점기 후 종적 감춘 따오기, 조선시대 전엔 서식기록 없어
“고고학-생태학 합동연구 통해 국내 서식시점-환경 등 살펴야”
백제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을 근거로 5세기 한반도에 천연기념물 ‘따오기’가 서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앞서 다양한 동식물 고고학 연구를 통해 옛 한반도의 생태환경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생태계를 파악하면 이를 자원으로 활용한 사람들의 생활상도 추정할 수 있다.
김우열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연구원은 최근 한국조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2009년 전북 고창 봉덕리 백제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봉황무늬가 따오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는 1979년 경기 파주에서 마지막 야생 개체가 발견됐다. 논문에 따르면 금동신발의 새 무늬는 고니, 기러기, 원앙 등 다른 금동유물들에 새겨진 무늬와 생태학적으로 다르다. 김 연구원은 “부리가 아래로 휘어져 있고 부리 크기가 머리에 비해 2, 3배가량 더 긴 점 등이 따오기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금동신발에서 여러 개체가 쌍을 지은 것처럼 묘사된 것도 따오기의 생태 습성과 닮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어린 따오기로 보이는 새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 사실을 미뤄볼 때 따오기가 고대 한반도에서 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따오기는 일제강점기 동요로 불리는 등 20세기 초까지도 우리에게 친숙한 철새였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이나 연산군일기에 이를 포획하거나 상납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엔 따오기 서식과 관련된 역사 기록은 전무하다.
김 연구원은 “현재 따오기 야생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봉덕리 고분 유물은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단서”라며 “고고학과 생태학 협동 연구를 통해 따오기가 서식했던 시점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적지에서 출토된 동물 뼈도 생태환경 분석에 핵심 자료로 쓰이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4∼2007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유적지에서 출토된 소, 말, 돼지 뼈에서 백제인들이 경작한 잡곡류 성분을 찾아냈다. 삼국시대에 소 등을 가축으로 사육한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출토된 쌀과 볍씨를 통해 농경이 이뤄진 시기를 가늠하는 식물 고고학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1976년 경기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10세기경 탄화미(炭化米·불에 탄 쌀)는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래됐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됐다. 흔암리 탄화미가 일본에서 출토된 것에 비해 600년 이상 앞섰기 때문이다.
옛 화장실 유적도 생태환경과 식생활 분석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예컨대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측주(厠籌·대변을 본 뒤 사용한 뒤처리용 도구)는 백제인들이 채식과 물고기 위주의 식단을 즐겼음을 보여줬다. 육식성 기생충인 조충이 아닌 채식을 많이 하는 이들이 걸리는 회충 편충이 측주에서 주로 검출된 것. 이와 함께 민물고기에 많이 서식하는 간흡충이 발견돼 백제인들이 근처 하천인 금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섭취한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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