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 유배시절 주막집 뒷방에 서당을 열었다. 자신은 둔하다며 배우길 주저하던 아이 황상(1788∼1870)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산은 아이가 학질에 걸렸을 때 다음 시를 써주었다.
황상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병중에도 공부를 놓지 않는 제자에게 스승은 큰 기대를 걸었다. 문사(文史)를 공부해 세상만사를 꿰뚫기를 바랐다. 천카이거 감독의 ‘아이들의 왕’(1987년)에도 그런 만남이 나온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산간벽지로 하방(下放)된 라오깐은 학교에 배치돼 말 못 하는 아버지를 둔 왕푸를 가르치게 된다. 왕푸는 아버지를 대변하기 위해 사전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배운 글자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는다. 황상이 학질에 걸린 채로 흐트러짐 없이 잔글씨를 쓴 것처럼.
선생 자신도 고난을 겪고 있지만 학생의 올바른 성장만이 관심사다. 황사영의 백서 사건에 휘말린 정약용도, 하방된 라오깐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를 제자와 함께 고민했다. 다산은 황상에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고 당부했다.(‘贈山石’) 당의 지침을 따르지 않아 쫓겨나는 라오깐도 학생들에게 신문을 베끼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쓰라고 가르친다. 왕푸에겐 특히 “아무것도 베끼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권력의 압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계속된다. 황상은 60년 뒤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했다.(‘壬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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