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생물학적 여성이다. 아들을 위해 대리 게임을 하는 엄마, 외도가 습관인 목사 남편에게 커밍아웃하는 아내, 치매 걸린 노모를 홀로 돌보는 비혼의 중년 여성…. 개인마다 다른 삶의 특수성과 여성이라면 겪는 보편성이 교차돼 각기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한 모순에 직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에는 여성의 생애를 장악해온 고질적인 담론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모성 이데올로기, 가부장제, 여성 혐오, 성적 대상화, 돌봄 노동…. 차곡차곡 쌓여 단단하게 굳어진 성차별적 제도와 인식에 의해 여성들이 어떻게 깨어지고 부수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피해자로만 남는 건 아니다. 불합리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정신만큼은 굴복당하지 않는 여성들. 몸은 타협할지언정 마음은 곧게 세우고, 공격해 오는 무수한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들에 나오는 여성들은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고, 한심하면서도 아름답다.
대부분의 서사에서 중심을 차지해온 남성이 이곳에선 주변 인물로만 그려진다. 남성들은 남편, 아들, 애인, 친구로 등장해 정조나 모성을 강요하는 등의 방식으로 무기를 휘둘러 여성들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까지 굴복시키진 못한다.
작가도 여성들이 직면한 부조리가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꺾이지 않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드는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낼 뿐이다. 단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 덕분에 독자에게 전해지는 여성들의 속마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2015년 등단한 박서련은 꾸준히 여성 서사를 발굴해온 작가다. 노동 운동가, 성폭력 피해자 등 여성이자 소수자인 이들이 세상에 맞서 자유와 양심을 지키는 모습을 그려왔다. 스스로 소수자이고 패배자였다는 감각을 잊지 않고자 글을 쓴다는 그가 7년간 발표한 작품을 엮은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으로 지난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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