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종이와 활자로 유럽을 뒤집은, 시대를 앞서간 편집자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5일 03시 00분


◇루터, 브랜드가 되다/앤드루 페트그리 지음·김선영 옮김/528쪽·2만2000원·이른비

마틴 루터(1483∼1546)라고 하면 종교개혁가로서의 활약상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천명하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당사자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그의 다른 면모에 주목한다. 시대를 앞서간 저술가이자 뛰어난 감각을 지닌 출판편집인으로서의 루터 말이다. 독일 비텐베르크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한 곳으로 종교개혁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1440년대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후 60년 가까이 지난 1502년까지도 인쇄기가 단 한 대도 없던 출판계의 변방이었다.

그런 비텐베르크를 출판업 중심도시로 만든 이는 루터였다. 그는 서른이 될 때까지 책을 출판한 적이 없었지만 95개 논제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자 저술과 인쇄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소수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에서 벗어나 독일어로 저술하는 결단을 내렸다. 장황하고 복잡한 신학적 글쓰기를 버리고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사용하자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루터의 글쓰기 자체가 막강한 브랜드가 된 것.

루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가치 제고에 나섰다. 그는 ‘미래에서 온 출판편집인’처럼 책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평생 인쇄소를 드나들며 활자체, 용지 크기, 표지 디자인 등을 직접 점검했다. 원고는 비텐베르크 내 인쇄소들에 고루 배분했다. 덕분에 비텐베르크는 1540년대에 성업 중인 인쇄소를 다섯 곳이나 두게 됐다.

자칫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종교개혁 이야기와 15, 16세기 유럽 인쇄시장 상황을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썼다. 깔끔한 번역 솜씨도 돋보인다. 인쇄와 책을 주제로 루터를 조명한 만큼 종교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읽어볼 만하다.

#루터#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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