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오랜 직장생활로 모은 저축금 수억 원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지긋했고, 재테크로 돈을 버는 친구들 앞에서 매번 작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 등 다른 여러 가상화폐를 뜻하는 알트코인에 투자했다. 알트코인은 위험도도 높지만 수익률도 크다는 생각에서다. 1주일 만에 수익률 20%를 올렸다. 환호했다. 하지만 2개월 후 투자금의 50% 이상을 잃었다. 직장인들의 고충을 상담하는 심리학자이자 자살예방교육전문가였지만 스스로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18일 에세이 ‘심리학자가 투자 실패로 한강 가기 직전 깨달은 손실로부터의 자유’(드림셀러) 펴내는 김형준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41) 이야기다.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가난한 삶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가상화폐, 주식,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얻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벼락거지’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주식 계좌도 없을 정도로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죠. 나만 돈을 못 버는 것 같은 억울함도 들었고요.”
그가 가상화폐에 대해 알게 된 건 2017년이다. 당시 비트코인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그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파트 값이 치솟고 주식 시장이 요동쳤다.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누구 집이 1년 사이에 3억 원이나 올랐다” “누가 비트코인으로 1개월 만에 1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보단 투자에서 긍정적인 기대를 표현하는 감탄사인 ‘가즈아’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는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지인들의 추천만 믿고 가상화폐를 사들였다. 출처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정보를 믿고 가상화폐를 사기도 했다. 투자 실패 후 끙끙 앓고만 있던 그가 가상화폐 투자를 포기한 건 가족 앞에 선 다음이다. 그는 “아내에게 투자에 실패했다는 말을 하지 말까 고민하는 순간 내가 중독자가 되는 문턱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며 “정신건강을 관리해주는 직업을 지닌 내가 투자로 돈을 잃었다는 수치감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가상화폐를 모두 팔고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일하는 그는 요즘 투자 실패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을 자주 상담한다. 그는 직장인들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며 심리학자도 흔들린다고 위로를 건넨다. 부끄럽지만 자신의 실패담을 책으로 써낸 것도 같은 이유다.
“잃은 돈을 되찾는 것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에요. 뻔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일상을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강 가즈아’처럼 극단적 선택을 은유하는 신조어가 투자의 상징처럼 쓰이는 게 안타까워요. 정말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투자를 하는 지 자문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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