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독자 시점/PART.1(전 8권)/싱숑 지음/각 300∼345쪽·각 1만3500원·비채
주인공 김독자는 늘 패배자의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땐 왕따를 당했고, 20대인 지금은 대기업 계열사의 계약직 직원으로 살고 있다. 김독자의 유일한 희망은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을 읽는 일이다. 10년간 연재된 이 인기 없는 웹소설의 독자는 오직 김독자뿐이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지막 회를 읽는 순간 사건이 벌어진다. 웹소설에 등장하던 도깨비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고,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존 미션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그 순간 김독자는 자신이 읽던 웹소설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웹소설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는 소설인지 현실인지 모를 이 세계 안으로 뛰어든다.
이 책은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원작 웹소설은 조회수가 2억 회를 넘을 정도로 웹소설 업계에선 이미 화제성과 작품성을 입증받은 작품. 웹소설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요구 덕에 종이책으로도 만나게 됐다. 예약 판매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점은 문학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기존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완성도가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웹소설 안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을 통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붕괴하는 소설적 기교는 정밀하다. 사회에서 낙오된 패배자의 삶을 그리며 현실 문제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주인공이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는 웹소설의 ‘회귀’ 설정을 뻔하지 않게 변주한 점도 매력적이다. 올해 종이책으로 출간된 장편소설 중에 이 정도 흡인력을 지닌 작품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될 정도다.
출판계가 웹소설에 문을 여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지난해 약 6000억 원으로 성장했다. 전체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웹소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출판계가 웹소설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주로 소비하는 웹소설과 달리 단행본은 소장 욕구를 자극할 수 있어 출판사 판매에도 유리하다. 다만 소장욕을 더 자극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페이퍼백이 아닌 양장본으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교보문고는 7일 기존에 운영하던 웹소설 플랫폼 ‘톡소다’에서 웹툰 서비스를 시작하고 톡소다에서 연재된 웹소설을 직접 웹툰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예스24도 웹소설 플랫폼 ‘북팔’을 인수했다. 웹소설과 웹툰을 단행본으로 펴내기 위해 준비하는 여러 출판사들의 소식도 들린다.
앞으로도 출판계가 웹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더욱 기대해 본다. 그래야 출판계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놓치고 있다는 독자들의 불만을 듣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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