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중증장애인 돕는 데 헌신 “사람 사는 곳이 법당이 되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1일 03시 00분


‘약천사 자광원’ 원장 성원 스님
“많은 사람들이 약천사에 도움 줘
받은 그 덕을 지역에 돌려야죠”

제주 약천사 주지에 이어 중증장애인을 돕는 ‘약천사 자광원’ 원장을 맡고 있는 성원 스님. 약천사 자광원의 외형은 사찰 형태로 조성됐다. 제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제주 약천사 주지에 이어 중증장애인을 돕는 ‘약천사 자광원’ 원장을 맡고 있는 성원 스님. 약천사 자광원의 외형은 사찰 형태로 조성됐다. 제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하기 전에는 성불하는 것도 미루시고 지금도 지옥의 문 앞에서 육환장을 들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지장보살님!”

1992년 환경 시위에 참여했다가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은 한 직장인의 삶을 바꾼 불교 기초교리서의 구절이다. 믿지 않으면 벌을 주는 게 아니라 끝없는 연민을 가르치는 불교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얼마 뒤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를 가위로 자르고 전남 순천 송광사로 향했다. 그는 송광사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행자 생활을 한 뒤 제주 약천사를 찾아 혜인 스님(2016년 입적)을 은사로 출가했다. 제주 약천사 주지를 두 차례 지내고 현재 중증장애인을 돕는 ‘약천사 자광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성원 스님(60)의 출가 사연이다.

자광원에서 16일 만난 그는 “부처님 법(法)은 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기 어렵다고 하니 경전과 은사의 가르침을 듣는 시간에 잠시도 딴청을 부릴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의 약천사는 동양 최대 규모의 대적광전을 자랑하며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지만 1996년 완공될 때까지 공사 현장 자체였다. 성원 스님은 큰 불사(佛事)를 돕고 은사가 입적할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그 가르침을 따랐다.

“은사는 부처님이 주신 시간과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호랑이 스님’이었죠. 그런데 다른 곳에 법문을 나간 사이 화재로 초가 두 채 중 한 채가 불탔습니다. 모두 조마조마한 순간인데, 은사가 ‘절의 환란은 여러분 잘못이 아니라 주지 잘못이다’라며 부처님 앞에 참회의 절을 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은사와의 마지막 시간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한 주 전쯤 곡기를 끊은 채, ‘나, 이제 간다. 죽었을 때 나를 위해 살아 있는 꽃을 꺾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자광원 설립의 주춧돌은 바로 불교와 은사의 가르침이라는 게 성원 스님의 말이다.

“사찰이 중증장애인을 돕는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변에서 만류했죠. 하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약천사가 좋아지고 있는데, 그 덕(德)을 지역에 돌리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법당이 되어야죠.”

현재 약 40명의 중증장애인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성원 스님은 부임하는 사찰마다 어린이합창단을 창단하고 2017년 약천사 신제주불교대학 ‘보리왓’을 개원하는 등 제주 지역의 불교 포교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스님은 출가 초기의 다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경북 안동의 한 사찰에서 겨울을 나는데 절에 쌀이랑 초가 떨어지더군요. 그 순간 나는 쌀 한 되, 된장 한 쪽박만 있으면 되니 세상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약천사 자광원#원장 성원 스님#중증장애인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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