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생존자들 사건 이후 삶 조명, ‘미래의…’ 펴낸 김승섭 고려대 교수
상이연금 절차 하소연 메일 받고, 생존자 고통에 무심했던 것 반성
10년이 넘었지만 트라우마 여전… 산업재해 관점서 해법 모색 제안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그날을 생각할 때마다 순직한 군인 46명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살아남은 58명의 군인도 있었다.”
신간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난다)를 최근 펴낸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43)는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피격 사건 후 생존 장병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은 내가 이들과 맺은 인연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다. 그는 2018년 생존 장병들에게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e메일을 보냈다. 지난해 4월에는 국방부 앞에서 팻말 시위를 하는 이들의 곁을 지켰다.
2020년 11월 천안함 생존 장병이 그에게 보낸 메일 한 통이 집필에 들어간 결정적 계기였다. “상이연금을 받기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 중인데 내 상태를 증빙할 자료가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는 “천안함을 둘러싼 정치공방에 휩싸여 정작 재난 이후의 삶을 이어가야 할 생존자의 고통에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고 말했다.
“제가 만난 생존 장병들은 여전히 천안함의 자장 안에 있더군요. 현실에서 ‘패잔병’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기 때문이죠.”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생존 장병의 삶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 생존 장병은 “상사가 내게 ‘천안함 출신이라 싫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응한 생존자 22명 중 13명(59%)이 ‘천안함 생존자라는 이유로 함께 있기 꺼림칙하다는 말을 부대 동료로부터 들었다’고 답했다. 몸이 아파도 혼자서 끙끙 앓았다. 설문에 응한 생존자 19명 중 13명(68%)은 ‘진료를 위해 부대에서 시간을 주지 않아서’ 혹은 ‘관심병사로 분류될 것 같아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결국 상당수 생존자가 군을 떠났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생존자 58명 가운데 44명이 직업군인이었는데, 이 중 20명이 제대했다.
“한국사회와 군은 임무 수행 중 트라우마를 겪은 생존자들에게 ‘너희를 품어줄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 달라’고 말할 기회를 놓친 겁니다. 직업군인으로서 소명을 가지고 천안함에 오른 이들을 군대가 지켜내지 못했으니까요.”
책 제목에 담긴 바람처럼 미래에 같은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그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산업재해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진영 논리를 떠나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돌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 그는 “산업재해 관점에서 보면 천안함 생존자들이 겪은 고통과 질병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패잔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 ‘생존 장병’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생존 장병들의 삶이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도 했다. 출간 후 최원일 전 천안함장으로부터 “여태 나온 천안함 책들 가운데 최고”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 책이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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