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서로 평생을 일하다 은퇴가 다가왔다. 자식들은 다 커서 집에 늦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생겼고 체력은 여전했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영어영문학과·중어중문학과·프랑스언어문화학과·일본학과 학사를 땄다.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닌 덕에 이젠 번역가라는 제2의 직업을 얻었다. 여태 번역한 책이 약 20권이다. 최근 에세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더퀘스트)를 펴낸 심혜경 씨(64) 이야기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하루 내내 집에 사람이 없지만 은퇴한 난 카페로 출근한다”며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카공족’이 바로 나”라고 웃었다. 그는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매일 3, 4시간씩 공부를 하거나 번역 업무를 한다. “매일 어느 카페에 갈 지를 고른 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요. ‘집순이’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나를 전환하는 거죠. 경복궁역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 의자, 동네 개인 카페의 창가 자리, 서울 종로구 서촌의 골목길에 있는 한옥 카페 구석이 제 방입니다.”
성균관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27년 동안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일을 좋아했지만 50대가 되자 슬슬 은퇴 이후의 삶이 고민됐다. 그때 찾은 게 외국어 공부였다. 총 8년 동안 방송통신대 학사 학위를 4개 취득했다. 학사 학위가 있으면 3학년으로 편입하는 방법을 이용한 덕이다. 그는 “두 아이가 다 크고 나서 퇴근 후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기니 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었다”며 “편입해서 졸업할 때까지 4학기 동안 전공과목만 수강해서 들어 짧은 기간 안에 외국어 기초를 습득했다”고 했다.
그는 은퇴 전부터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녔다. 번역을 배우면 원서를 직접 읽을 정도로 외국어 능력이 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다 우연히 번역 업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조금씩 번역 일감을 받다간 사서 은퇴 후엔 출판 번역가로 산다. 이젠 강연회에도 불려갈 정도로 번역가로 커리어를 쌓았다.
가끔씩 바이올린, 기타, 수채화, 영화이론도 공부한다는 그. 이토록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환갑이 넘었지만 아직 전 너무 건강해요.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도 않고요. 공부야말로 삶의 권태기를 덜어내고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앞으로도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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