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사서로 20년 가까이 일하던 어느 날 은퇴가 다가오는 게 실감났다. 다 큰 자식들은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유시간이 생겼고 체력은 여전했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영문학 중문학 불문학 일본학을 전공했다.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닌 덕에 번역가라는 제2의 직업을 얻었다. 여태 번역한 책이 약 20권. 최근 에세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더퀘스트)를 펴낸 심혜경 씨(64) 이야기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서울시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 사서로 27년간 일한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0대가 되자 슬슬 은퇴 후의 삶이 고민됐다. 은퇴를 10년 앞둔 48세부터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학부 3학년으로 들어가는 방송통신대 학사편입을 통해 8년간 4개 전공을 하며 외국어 4개를 익혔다. 전공별로 편입 후 졸업까지 4학기 동안 집중 수강해 짧은 기간에 외국어 기초를 익힐 수 있었다. 그는 “사서여서 책읽기를 좋아한 데다 다양한 원서를 읽고 싶은 마음에 외국어 공부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늦은 나이의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퇴근 후 오전 2, 3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했다. 빨래, 청소 등 일거리가 쌓여 있는 집에서는 집중하기 힘들어 휴일이나 밤마다 카페로 갔다. 서울 경복궁역 근처 카페와 동네 카페 창가 자리, 서촌 한옥카페가 그의 공부방이 됐다. 그는 “걸으며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약속 장소 앞 카페에서 틈틈이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 문화센터에 개설된 번역가 양성 과정도 다녔다. 번역을 전문적으로 배우면 원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취미라고 여겼지만 수업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번역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한 번역가 경력이 올해로 13년째. 영국 작가 헬레인 한프의 에세이 ‘마침내 런던’(에이치비프레스·2021년) 등 번역한 신간이 쌓이면서 이제는 관련 강연에도 종종 초청받는다. 요즘은 바이올린, 기타, 수채화를 배우고 영화 이론을 공부하는 등 각종 예술 분야를 파고들고 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환갑이 넘었지만 저는 정말 건강해요. 아이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도 않고요. 공부야말로 권태기에서 벗어나 인생을 성실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앞으로도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타인 의식 않고 하고 싶은 일 해… 평생 바코드 찍는 아줌마로 살 것”
40대에 문예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를 살려 중국 시장 조사 업무를 하는 1인 기업을 세워 운영하기도 했다. 남들 앞에 자랑하기엔 회사를 운영하는 일, 박사 학위를 지닌 건 폼 났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편의점이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육체노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남들 시선에 연연하기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편의점 점주로 살기 시작했다. 18일 에세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몽스북)를 펴낸 박규옥 씨(55) 이야기다.
그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늦게까지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아놓고 ‘겨우 장사나 하려고 그랬느냐’는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고 했다. 1991년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원 강사로 일하다 가족 때문에 중국에 10여 년 머물렀다. 뒤늦게 다시 공부를 시작해 2006년 중국 선양 랴오닝대에서 중국 근·현대문학 석사, 2010년 같은 대학에서 문예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부터 경기 성남시에서 전업으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회사 일도 했지만 작은 가게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게 낫다 싶었어요. 일터로 나오는 것이 즐겁고 즐거운 일을 하니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됐죠.”
지적인 업무에만 익숙하던 그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일을 하는 게 만만치는 않았다. 새벽에 들어오는 물건을 나르다 근육통을 앓기도 하고, 밤마다 행패를 부리는 ‘진상 손님’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편의점 일을 버티기 위해 그는 지나치게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본사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과도한 친절은 일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상식선에서 친절하면 된다고 알려준다”며 “편의점에서 밤낮 없이 일하면서 부당하게 욕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우유를 사가는 대학생, 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사는 회사원…. 그는 가게에 자주 오는 단골손님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서류와 싸움하는 회사 일보다 자영업자가 얻을 수 있는 기쁨은 소소한 소통이다. 힘들게 얻은 박사 학위가 아깝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의 축소판인 편의점에서 삶의 교훈을 배우고 있기에 후회하지 않아요. 평생 바코드 찍는 아줌마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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