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개인주의 문화의 끝판 왕 [고양이 눈썹]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7일 15시 51분


2021년 11월
2021년 11월

“…누군가가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가능한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예의와 배려의 문제에 더 가깝다. 한 사람으로서, 상처받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헤아리려는 가장 기본적인 배려의 마음 말이다”

- 한승혜(작가), ‘다정한 무관심: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2021년)에서

#1

책 제목에서부터 작가분이 개인주의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역시 책 서문에서부터 개인주의 얘기를 하시네요.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국가·사회 등 집단보다 우선이라 여기는 생각입니다.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죠.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자율·독립성을 중시합니다. 서양의 근대 이후 조금씩 번지고 뿌리내린 가치관이죠. 현대 민주주의와 같이 성장했습니다.

개인주의는 ‘내가 소중하듯 타인도 나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인정합니다. 타인의 욕구와 권리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기주의와 달리 공동체와 협동과 연대에 익숙합니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연결해 공동체를 구성해야 비로소 합리적인 집단이 형성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즉 사회를 개인과 개인의 암묵적 계약체로 보는 것이죠.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이 있죠. 개인이 각자의 권리와 사생활을 존중받으면서 뭉칠 땐 뭉친다는 뜻일 것입니다. 각자 독립된 개체와 인격을 갖고, 타인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는 협동합니다.

#2

개인과 개인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윤활유는 뭘까요. 바로 예절과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예절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훈련만 잘 하면 몸에 쉽게 뱁니다. 눈치만 있어도 학습하기 쉽죠. 강아지들도 젖떼기 전까지 어미 곁에서 키우는 것은 사회화 과정을 위해서입니다. 다른 형제자매들과 놀면서 강아지들끼리의 예의를 배우는 것이죠. 물기 놀이를 해도 살살 물어라, 젖 먹을 때 다른 형제 자매들을 너무 밀쳐내지 마라 등등….

반면 배려는 까다롭습니다. 제 주변에도 참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배려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해주면 안 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티 안 나게 묻지 않고 알아서 말이죠. 배려를 한답시고 돕는 행동이 오히려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칫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아니, 상처에 생채기를 더 내기도 합니다. 도움을 제공하는 분들도 상대방이 오히려 역정을 내는 바람에 마음을 다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알죠?

최고의 배려는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돕는 것입니다. 배려의 공식은 눈치+예의+선의+거리두기+섬김입니다. “내가 널 위해 이런 걸 했어”라고 밝히는 건 배려가 아니라 생색입니다. 상대방이 바람 불 듯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일이 잘 풀리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죠. 돕는 사람은 투명인간이 돼야 합니다. 돕는 이의 존재감이 뿜어져 나온다면 배려가 아닙니다. 거리를 두고, 도움의 손길이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합니다.

다정한 무관심. 요즘 많이 쓰는 ‘츤데레’가 언뜻 이와 비슷한 말 같습니다. 배려는 개인주의 문화의 완성본, 끝판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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