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방영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A 씨가 낮 시간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면서 한 말이다. 해당 화면에는 ‘낮술이 주는 여유를 즐기고픈 A 씨’라는 자막이 적혀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A 씨가 쾌적한 숙소에 도착한다. A 씨는 영화를 틀고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낮술’을 즐긴다.
28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이 장면을 본 성인 중 절반 가까이인 47.0%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응답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미디어에서 음주하는 장면이 많이 나올수록 음주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커져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많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음주의 긍정적 효과는 음주를 통한 대인관계 개선, 스트레스 해소 등이다. 이는 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20~64세 10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연구팀은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의 음주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외에 인터넷 ‘술방’(술을 마시면서 하는 방송) 등이 최근 증가하면서 음주 장면에 대한 노출도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강창범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실장은 “보다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러한 콘텐츠들이 음주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음란·폭력 장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음주 장면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연구팀은 “음주의 폐해를 막기 위한 정부 정책이 개인의 인식 개선이나 행동 변화 쪽에 집중돼 있다”며 “하지만 미디어 음주 장면은 음주의 폐해를 유발하는 환경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미디어 음주 장면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미디어 내에서 음주 장면은 얼마나 자주 등장할까.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 219개(1787편)와 예능 프로그램 438개(1739편)를 분석한 결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1편 당 음주장면이 평균 2.3건 등장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17년 보건복지부와 마련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이들 중 22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요청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중 2건을 심의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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