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사회, 외면할 수 없는 예술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일 03시 00분


개인전 ‘유령 패션’ 안창홍 작가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멋진 옷들
자본-권력에 짓눌린 사람들 풍자
화려해 보여도 자아는 오간 데 없어

개인전 ‘유령 패션’ 전시 작품 앞에 선 안창홍 작가. ‘유령 패션’ 연작은 디지털펜화, 유화, 입체로 다양하게 변주했다. 그는 “여러 방식으로 메시지가 폭넓게 전달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개인전 ‘유령 패션’ 전시 작품 앞에 선 안창홍 작가. ‘유령 패션’ 연작은 디지털펜화, 유화, 입체로 다양하게 변주했다. 그는 “여러 방식으로 메시지가 폭넓게 전달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타고나길 그늘진 곳을 쫓는 사람이 있다. 안창홍 작가(69)의 시선은 늘 시대의 어두운 면에 머물렀다.

“사회의 응달은 없어지지 않아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 달콤하지 않죠. 응달 속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소시민에게서 시대의 아픔을 직면하게 만든다. 안 작가가 이번에 내놓은 화두 역시 인간의 ‘공허함’이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유령 패션’은 욕망의 허상을 다룬다. 지난해 에콰도르 키토에서 전시를 연 그의 귀국 보고전으로, 회화 및 조각 32점과 디지털펜화 105점, ‘마스크’ 연작 23점으로 구성됐다.

안 작가는 이번 연작에 대해 “자본과 권력에 의해 개인성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유령 패션’ 회화들 속 의상은 한껏 멋스럽게 포즈를 취했지만 정작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없다.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만 남고, 자아는 사라져 도구 밖으로 흘러내린다. 옆에 나란히 놓인 ‘마스크’ 조각 연작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했으나 붕대로 가려진 눈과 이마에 난 구멍은 탐욕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현실참여주의적’이라고 표현했다. 가족과 떨어져 경기 양평군 외딴 마을에 작업실을 두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도 문명의 폭력성을 더 절실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도 굴하지 않았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자기 안의 언어를 발언하는 사람’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반골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게 괴롭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작가는 가벼이 웃다 말했다.

“힘듭니다. 힘든데도 외면할 순 없잖아요. 사회가 불운하면 작가도 암울할 줄 알아야죠.”

5월 29일까지. 5000∼7000원

#안창홍 작가#개인전#유령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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