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사도’, ‘한국 문학의 전령사’, ‘문화행정의 도인’…. 무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는 선인이었기에 그가 떠나감은 문화를 배웠던 우리의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문화부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밖에서 뛰놀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문화부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치면서 한국 문화행정의 기틀을 마련해 놓았다.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자 당시 문화예술계에선 두 손을 들어 환영하면서 많은 기대를 했다. 문화계에선 그를 한국의 ‘앙드레 말로’라 칭송했다,
그는 재임 2년 동안 한국 문화예술행정의 기틀을 마련했다. 장관이 내건 첫 테마는 문화주의 실천이었다. “문화주의는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제어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또 하나의 삶의 빙식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양식”이라면서 “교통순경이 도로교통 질서를 안내하는 것과 달리 운전자나 보행자가 스스로 교통질서를 지켜야겠다는 의식을 만드는 것이 문화, 문화주의다”고 역설했다.
문화주의는 문화와 시민을 연결시키면서 사람들에게 문화의식을 불어넣어 민주시민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에 국가 발전은 산업기술만으로는 되지 않고 문화, 문화주의로 나아갈 때 발전이 이루어질 것 이라고 주장하며 문화가 밥 먹여 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오늘날의 우리나라 문화국가발전을 예언했다.
이같이 그는 철저한 문화주의자였다. 그는 노태우 정부가 처음 집권하자마자 문공부 장관 제의를 받았으나 공보가 싫어서 거절하고 후에 순수 문화부가 창설됨에 따라 취임했다.
문화주의 실현을 위해 그는 찾아오는 사람에게 문화의식을 심어주고 아울러 찾아가서 문화를 덧입혀주는 양방 통로를 제시했다.
먼저 문화부를 행정부처라기보다 명실상부한 문화부처로 만들기 여러 가지 변혁을 꾀했다. 민원전화를 ‘까치소리’라 명명하고 건물 벽면을 그림이나 글씨로 채우고 엘리베이터에도 시를 걸게 하거나 새소리가 들리게 하는 등 분위를 쇄신했다. 문화부 산하 모든 문화기관에 문화학교를 설립해 사람들이 찾아와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문화의식을 배우고 접하게 했다.
문화의식 고양을 위해 ‘움직이는 미술관’, ‘움직이는 도서관’, ‘움직이는 박물관’, ‘움직이는 음악당’이라는 이름으로 그룹과 자료를 형성해 병원, 고아원, 요양소를 방문, 문화예술을 만나게 했다. 서울시와 협의해 소외되고 외진 동네 자투리땅에 쌈지공원을 조성해 전시 공연을 했다.
행정 용어도 우리 문화에 맞는 용어로 개명하는 국어 순화운동도 펼쳤다. 자동차 도로 가장자리 길을 일본식 이름으로 ‘노견(路肩)’이라 하던 용어를 관계부처와 싸워 ‘갓길’로 바꿨다.
그는 취임 초에 문화발전 10개년 계획을 작성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을 설치하고 미술의 해, 음악의해 ,연극의 해 등 예술 장르별로 예술의 해를 지정하여 1년 동안 집중 예산지원 융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달의 문화인물 선정, 장한 어머니상 신설, 다양한 예술 진흥책을 추진했다.
그는 문화부가 설립된 1990년을 문화의 원년으로 삼자면서 문화부 직원들에게도 문화의식을 독려했다.
“문화는 바람개비 효과를 가져옵니다. 바람이 바람개비를 돌게 하듯이 여러분은 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치경제처럼 딱딱한 현실(바위)에 이끼같이 포근한 문화를 입히는 철저한 전달자가 되어야합니다. 여러분은 우물물을 퍼 올리는 두레박, 자신을 태워 남을 일으키는 부지깽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라도에서 백두까지’ 슬로건을 걸고 전 국민이 문화를 누리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자고 권유했다.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그는 장관 취임 이전부터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업무를 지시하는 등 전자 산업의 초기 선구자였다. 그는 2년 간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일을 통해 문화용어를 만들거나 널리 인식시켰다.
장관 재임시절 북한 연형묵 총리 일행이 남북 총리회담 일환으로 서울에 왔을 때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은 ‘오늘이 오늘이소서’ 공연으로 북한 대표단을 경악케 만든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2년의 재임기간을 마치면서 떠나는 날 직원들은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는 10년을 재임했다는데….
문화예술계의 큰 별이 갔다. 오늘날 한국문화를 착화(着花)시킨 아름다운 인물이 사라졌다. 한국 문화계에 앞으로도 이만한 인물의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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