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에서 아래로 푹 꺼진 화강암 벼랑 밑바닥으로는 청록빛 강물이 아득하게 흐르고 있다. 50대 남짓한 나이, 애꾸눈의 한 사내가 가마솥 물 끓는 소리를 내는 한탄강 여울을 하염없이 굽어다본다. 밀려드는 회한과 배신에 대한 분노! 그의 마음 역시 물소리처럼 들끓는다. 이곳은 철원군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드르니 쉼터, 그리고 사내는 1100여 년 전 한반도를 격동시켰던 후고구려 건국의 주인공 궁예(?∼918)다. 그는 스스로 현세에 내려온 미륵불임을 자처하며 철원에서 ‘미륵의 나라’를 꿈꾸다가 918년 왕건의 반란에 의해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와중에 잠시 들른 곳이 이곳 드르니 쉼터가 있는 드르니 마을이다. ‘들르다’의 순우리말 ‘드르니’가 의미하듯, 궁예가 들렀다 간 마을이라는 뜻이다.
한탄강이 남북축으로 관통하는 철원은 궁예가 905년 천도한 후 13년간 화려한 전성기와 처참한 몰락을 겪은 곳이다. 따라서 철원 한탄강 물길을 따라가는 여행은 궁예의 흔적을 쫓는 역사 탐방길이기도 하다. 》
○한탄강 하늘길에서 만나는 1억 년의 지질 여행
한탄강 물길(주상절리길) 여행은 주상절리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잔도를 걷는 ‘한탄강 하늘길’과 한탄강 물 위를 직접 걸어가보는 ‘한탄강 물윗길’로 크게 나뉜다. 하늘길 트레킹은 드르니마을 매표소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순담계곡까지 가는 코스와 거꾸로 순담 매표소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따라 드르니마을 매표소까지 내려오는 코스 두 가지가 있다. 물길 여행은 가급적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가 물 기운을 온전히 느껴보는 데 유리하다.
드르니마을 매표소에서 입장료 1만 원(5000원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줌)을 낸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철원군이 지난해 11월 개방한 하늘길 잔도는 깎아지른 벼랑에 선반처럼 위태롭게 매달린 다리가 무려 3.6km나 이어지는 길이다. 공중에 떠 있는 길이라고 해서 하늘길로 불린다. 절벽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따라 유네스코가 인증한 국가지질공원(주상절리 협곡)을 찬찬히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은 1억여 년 전 화산 폭발로 지하의 화강암이 땅 밖으로 드러난 이후 약 54만∼12만 년 전에 현무암 용암류가 그 위로 흐르게 되면서 생겨난 침식 지형이다. 평지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현무암 협곡이다.
한탄강 하늘길에는 풍광이 빼어난 3개의 스카이전망대, 각기 다른 주제와 디자인으로 건설된 13개의 출렁다리(잔교), 그리고 10개의 쉼터가 있다. 특히 다리 이름을 통해 한탄강 지질을 눈으로 확인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주상절리 틈으로 피어난 돌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돌단풍교, 화강암이 용솟음치면서 가로로 깨진 수평절리가 인상적인 수평절리교, 화강암과 현무암이 공존하는 현화교, 화산 활동으로 흘러나온 마그마가 빠르게 식으면서 생긴 회색 혹은 검은색의 현무암 기공을 관찰할 수 있는 현무암교 등이다.
길 중간중간에 배치된 안내 요원들을 통해서도 한탄강 지질과 관련 설화 등에 대한 구수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다. 이를 테면 구멍이 숭숭 난 철원의 현무암은 ‘울음돌’이라고도 불린단다.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게 되자 돌들도 눈물을 흘려 구멍이 나게 됐다는 거다. 전설을 전하는 철원 출신 안내요원의 말에서 역사적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고 있는 궁예에 대한 애틋한 정마저 느끼게 된다. 드르니마을 매표소에서 순담매표소까지는 2시간 정도면 풍광을 충분히 즐기며 여유롭게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다.
○물 위를 걸으며 즐기는 물기운 세례
순담매표소가 있는 순담계곡에서부터는 한탄강을 따라 더 북상하는 트레킹인 물윗길 코스가 이어진다. 말 그대로 한탄강 물 위를 걷는 코스다. 순담계곡-고석정-마당바위-송대소(은하수교)-태봉대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한탄강 위에 띄워놓은 부교를 걷는 순수 물윗길 2.4km와 강변길을 이용하는 5.6km 등 총 8km 구간인데 따로 입장료(1만 원)를 내야 한다. 이 물윗길은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탄강 수위가 낮아지는 10월부터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하는 3월까지만 운영한다.
물 위를 걸어보는 것은 색다른 체험이다. 흘러오는 물길을 맞받아치면서 걸어가다 보면 온몸이 물로 정화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물의 풍요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상징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또 물윗길은 잔도보다 걷기가 더 쉽지만 물에서 바라보는 협곡의 풍광은 또 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고석정에서 만나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우뚝 서 있는 고석바위, 거대한 마당바위, 남북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승일교와 비대칭 현수교인 은하수교, 강물이 깊은 소(沼)를 이룬 송대소 등이 물윗길에서 만나는 장관들이다.
물윗길 코스가 끝나는 태봉대교는 번지점프로 유명한데, 궁예의 태봉국에서 다리 이름을 따왔다. 하늘길의 첫 쉼터인 드르니 쉼터와 물윗길의 마지막 코스인 태봉대교가 모두 궁예와 연결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궁예가 민통선 내에 도성을 세운 까닭은?
한탄강 주상절리길(하늘길+물윗길)에서 빠져나와 더 북쪽으로 철원 노동당사(철원읍 관전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서는 궁예 관련 얘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먼저 철원읍과 동송읍의 주산인 금학산은 도선국사(827∼898)가 궁예에게 도읍 터로 천거하면서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300년 동안 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25년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다. 궁예는 이 예언을 무시했다. 현재의 민통선 내 고암산(780m·김일성고지)을 주산으로 삼아 왕궁을 조성했고 결국 예언대로 짧은 통치 끝에 무너졌다.
아마도 이는 왕건의 역성혁명을 정당화시키거나 짧게 끝난 태봉국의 운명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지어낸 말인 듯하다.
궁예가 도선국사의 말대로 서쪽의 금학산을 주산 즉, 배산(背山)으로 삼으면 동쪽으로는 땅 밑으로 흐르는 한탄강이 임수(臨水)가 된다. 한탄강은 양수 시설이 없으면 절벽 밑의 물을 이용할 수 없고 물살이 거칠어 물류 이동로로 삼기에도 부적절하다. 한 나라의 도읍지 물길로는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궁예는 금학산 일대가 비범한 기운을 지닌 땅임을 알아차렸던 듯하다. 금학산 자락 아래 화지4리는 과거 하늘이 낸 황제의 터라는 의미로 천황지(天皇地)로 불렸다. 철원에서 궁예의 부하로 활약하던 시절 왕건이 살았다는 집터도 바로 인근에 있다.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철원향교지(철원읍 월하리)가 바로 그곳이다. 현재 잡초만 무성한 철원향교지는 풍수적으로 보기 드문 명당 터라는 점에서 거물급 지도자의 집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철원항교 터 건너편 산쪽으로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도피안사가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산사 마당에는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고 본당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 또한 강원도의 숨겨진 명당 사찰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궁예가 꿈꾸었던 미륵의 세상은 이상 세계에 도달한다는 도피안사의 절 이름과도 썩 어울린다.
역사탐방 여정은 북한 철원군 노동당사에서 끝내기로 한다. 북한이 6·25전쟁 직전까지 사용한 노동당사는 2002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안보교육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바로 이 너머 북쪽으로는 철원평화전망대가 있고, 거기서 궁예가 건설한 왕궁터 흔적을 망원경을 통해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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