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의별 일이 다 흔들어도… 별의별 연대로 나아가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9일 03시 00분


◇헬프 미 시스터/이서수 지음/342쪽·1만5000원·은행나무

이 소설엔 선량하지만 순탄치 않은 가족이 등장한다. 15평 남짓한 낡은 빌라에 사는 다섯 식구는 풍요롭진 않지만 적당히 안온한 일상을 보낸다. 실질적 가장인 수경이 회사에서 약물 성범죄를 당하기 전까진….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회사에서 수경은 ‘독극물이 가득 차 있는 얼음’ 같은 존재가 됐다. 사람들은 그녀를 녹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사(凍死)할 때까지 품고 있을 수도 없었다. 도망은 피해자의 몫, 수경은 사직서를 내야 했다.

수경의 퇴사 후 가족의 생계는 막막해졌다. 평생 청소노동을 하던 엄마 여숙, 식품회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일 없이 지내는 아빠 천식, 경력단절로 사실상 백수인 남편 우재 그리고 초등생 조카 준후까지. 수경에겐 상처를 돌볼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극복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그 일에 매몰돼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으니까 잊은 척하는 것이다.”

소설은, 수경이 ‘그 일’을 당한 후 가족 모두가 생업에 뛰어든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자차 배송, 대리운전, 음식 배달…. 가족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을 한다. 무엇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원했던 수경의 선택은 ‘헬프 미 시스터’. 의뢰인도 구직자도 모두 여성인 여성 전용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앱) ‘헬프…’는 수경이 경험하는 연대와 구원, 치유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해당 앱을 두고 “별의별 게 다 있다”고 평가한 천식의 말에 저자는 여숙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런 게 필요한 세상이겠지.”

저자는 수경이 스스로 일어서고 상처를 지닌 채 걸어가며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경을 홀로 두지 않고 동행하는 가족을 세운다. 한 사람과 한 가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은 상존한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의 시선을 그 안에만 머물게 놔두지 않는다. 무너지거나 다그치지 않고 서로를 감싼 채 뚜벅뚜벅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연대#헬프 미 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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