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을 생전에 만난 건 두 차례였다. 지난해 12월엔 문화창조자로서 그의 삶과 젊은 세대에 대한 조언을, 올 1월엔 성큼 다가온 병과 고통을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 고인이 작고한 뒤 세상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건 부녀(父女)의 인연이었다. 딸의 10주기를 앞두고 세상을 떠난 고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추측해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고인은 세간의 호기심을 다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출간된 책에 딸을 위한 시들을 담았으니 말이다. 이 책은 ‘이어령의 유고시집’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가 생전에 구술하거나 집필한 시가 실려 있지만 그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쓴 딸에 대한 반성문은 유언처럼 읽힌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내 살을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 하지만/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데/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시 ‘살아 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중)
그는 10년간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것 같다. 그는 시에서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을 한 봉지 약만도 못한 것이라 부른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으로서 부단히도 연구하고 집필하던 시기에 가족에게 신경 쓰지 못한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죄인이다. 딸을 향해 고인은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며 슬퍼한다.
항상 마음이 단단하고 자신감에 차 있던 가장은 딸이 떠난 뒤 시드는 꽃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 여린 노인이 됐다. 고인은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누군가 울면/나도 따라 운다”(시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중)고 고백한다. 고인은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혹시 너냐/그리워서 왔느냐/왜 문만 흔들고 가니”(시 ‘혹시 너인가 해서’ 중)라고 절규한다. “착신음이 들리면 혹시나 해서/황급히 호주머니에서/전화기를 꺼낸다”(시 ‘전화를 걸 수 없구나’ 중)는 문장에선 황망한 고인의 심정이 느껴진다.
생전 만났을 때 고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고인과 가까웠던 한 문인은 “그는 죽음을 기다린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고인은 시의 세계에서 딸이 생전 살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헌팅턴비치로 떠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의 마침표를 찍는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시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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