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상에 휠체어가 가지 못할 곳은 없으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6일 03시 00분


◇나는, 휴먼/주디스 휴먼 등 지음·김채원 문영민 옮김/336쪽·1만7000원·사계절

그가 가는 길이 곧 미국 장애 인권사였다. 이 책은 미국 장애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이다. 1970년 당시 23세였던 저자는 교사를 꿈꿨다. 성적은 우수했고 실무 경험도 갖췄다. 하지만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그의 교사 면허를 불허했다. 그가 생후 18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에서였다. 멈출 것인가 싸울 것인가. 그는 꿈을 지키기 위해 후자를 택했다. 1970년 5월 연방법원에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년간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해 교사 면허를 받아낸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교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용기 있는 첫걸음이 세상을 바꿨다. 얼마 뒤 뉴욕주는 장애인의 교직 접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저자와 장애운동가 60명은 1989년 9월 공공·민간 모든 영역에 걸쳐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장애인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정문 앞에 83개의 계단이 있었지만 이들을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휠체어에서 뛰어내린 이들은 하룻밤을 새워 몸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미국 언론은 이날의 사건을 ‘시민권 투쟁’으로 대서특필했고 1년 뒤 법안은 통과됐다.

꿈을 지키기 위해 차별과 맞서온 저자는 “장애가 나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성취하게 했다”고 말한다. 훗날 저자는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발탁돼 장애 인권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행정가가 된다. 차별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 왔기에 찾은 길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저자와 같은 길을 걸은 국내 장애운동가 박찬오 씨의 감상평이 나온다. 20년 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무작정 세계은행 빈민구제팀에서 일하던 저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저자는 그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껏 문을 열어 보자”고 말했다. 이 말에 힘입어 박 씨는 2002년 서울시 지원을 받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세웠다. 저자의 발자취를 묵묵히 쫓은 그는 20년이 흘러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때 당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났다’고.

#휠체어#차별#장애#장애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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