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전망이 밝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출판계 원로들은 편집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미래가 달렸다고 진단한다. 투입 대비 산출을 끌어올려야 매출이 늘고 연봉이 올라 인재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차 직장인 입장에서 머리가 쪼개지는 말이다. 연봉 인상도, 인재 영입도 좋다. 하지만 결국 매출을 더 올리라는 얘기 아닌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지구적 차원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큰 그림을 그린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부총재를 지낸 저자는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 경제정책의 방향을 잡아왔다.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국가 개입과 시장 자유 사이의 ‘제3의 길’까지 사회를 중시하는 영국 경제학의 전통을 계승한 책이다.
흔히 복지국가는 부자로부터 빈민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체제로 불린다. 하지만 이런 로빈 후드식 재분배는 복지국가의 기능 중 25%에 불과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복지국가가 하는 일의 75%가 개인의 생애주기에 걸쳐 위험에 대비하는 ‘돼지 저금통’ 역할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노동할 수 있는 성인기에 국가에 보험료를 내고, 은퇴 후 국가로부터 연금과 보건의료 등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개인이 무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한 사람의 인생 중 어느 시기에 투자하는 게 효율적인지를 따지는 일이다.
저자는 육아휴직 지원은 미래 노동력을 기르는 일을 분담하고, 여성 노동력을 적극 포섭해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길러야 좋다는 인식, 아빠 임금이 더 높은 상황 때문에 한국 아빠들은 유급 육아휴직을 잘 쓰지 않는다. 이럴 때는 개인과 기업에 부담을 지우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9개월의 유급 육아휴직 중 3개월은 여성에게, 3개월은 남성에게 주고 남성이 자기 몫을 쓰지 않으면 나머지 3개월이 소멸되는 아이슬란드의 정책을 참고할 만하다. 1960∼2010년 미국의 생산성이 최대 40%까지 늘어난 배경에는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과 흑인, 소수민족 출신의 인재가 좋은 일자리를 얻도록 설계한 정책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출판계에서 일할 때도 나이, 경력, 결혼 여부, 독서 이력이 다른 동료들과 일할 때 어려운 문제를 풀 실마리를 얻곤 한다. 개인의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동료는 경쟁 상대이지만, 책이 안 팔리는 현실에 대응할 때는 동업자가 된다. 구성원의 나이, 성별, 배경이 다양해지면 출판계의 시야가 넓어지고 생산성도 오르지 않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