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연습실. 뮤지컬 ‘마틸다’의 닉 애쉬튼 국외협력연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3명의 아이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번쩍 손을 들었다. 처음 지목된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답했다. “잘못된 일을 자기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대답했다. “텔레비전보다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마틸다는 누구 앞에서나 기죽지 않아요.”
개막까지 7개월 넘게 남았지만 뮤지컬 ‘마틸다’는 무대에 오를 아역배우를 뽑는 오디션으로 한창이다. 뮤지컬 ‘마틸다’는 관람등급 ‘8세 이상’이지만 8세 언저리의 아역배우가 가장 많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마틸다는 물론이고 앙상블까지 포함하면 아역배우만 8명이 출연한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아역배우 오디션에는 남녀 포함 800여 명이 지원했으며 복수 캐스팅을 감안하면 최종적으로 약 20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서게 된다.
이날 마틸다 역을 뽑는 세미파이널 오디션에 참석한 아이들은 8~11세까지 대부분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극중 5세 여아인 마틸다를 연기하기 위해선 ‘키 132cm 이하’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틸다 또래인 브루스, 에릭 등을 연기하는 남아 배우도 ‘키 142cm 이하’ ‘변성기 이전’ 등 신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닉 연출은 “기본 요건이 충족된 후엔 무엇보다 캐릭터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오디션에서 캐릭터를 설명하고 묻는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캐릭터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통상 오디션은 배우들이 춤이나 노래, 연기를 시연하고 심사위원이 합불 여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아역배우 오디션은 일종의 학습과정을 동반한다. 오디션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직접 춤, 노래, 연기를 가르친 후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다.
이날 오전 반항아 브루스 역을 뽑는 오디션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주위로 우르르 몰려간 20명의 아이들이 반주에 맞춰 오디션 지정곡 ‘revolting children(불쾌한 아이들)’의 한 대목을 합창했다. 유심히 듣던 음악감독 스티븐 에이모스는 손을 들어 반주를 멈추고 설명을 시작했다. “늘어지면 안 되고 내질러야 해” “마지막 음절은 짧게 해서 다시 불러보자” 합불 여부를 가리는 오디션이라기 보다는 음악 수업같이 느껴졌다. 이날 브루스 오디션에 참가한 나다움 군(11)은 “브루스 노래들은 음이 높게 올라가서 어려운데, 높은 음정을 정확하게 낼 수 있게 열심히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번 오디션에는 ‘페어런츠 브리핑’(parents briefing)이 마련됐다. ‘마틸다’ 제작사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직접 기획한 행사로 탈락한 아이들 부모에게 직접 이유를 설명하고 위로한다는 취지다. 이날 ‘페어런츠…’에 참석한 부모는 20명 남짓이었다.
‘페어런츠…’에서 닉 연출은 “마틸다 오디션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아니라 공연에 필요한 여러 재능이 균형 있게 발달했는지 고려한다”며 “8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훌륭하고 많은 것을 성취했으니 많이 축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브루스 역 오디션에 참가한 10살 아이를 둔 송정은 씨(39)는 “아이가 탈락해도 축하해주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며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잘 안되더라도 자랑스럽다고 꼭 안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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