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박상영(34)과 한 대학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같이 들으며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등단하기 전이기 때문에 소설은 정식 작품이 아닌 연습용으로 지은 습작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엔 독특한 기이함(?)이 묻어있어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박상영의 소설 주인공은 속으론 슬퍼하면서도 겉으론 무심했다.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적 규범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고통스러워했다. ‘감정’에 대해 끝까지 파고드는 작품이라 그랬을까. 길을 걷다 문득 그 작품이 생각나 걸음을 멈춘 적이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2016년 등단한 소설가 박상영의 중·단편소설 4편을 엮은 연작소설집이다. 30대 초반의 남자 주인공이 좌충우돌하며 삶과 사랑을 배워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 책 역시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묘미다. 소설은 청춘의 사랑과 이별의 행로를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그려낸다. 사랑에 대해 밀도 높게 성찰하는 문장도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남김없이 쥐어짜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쩐지 씁쓸하고 울고 싶어진다.
박상영이 그리는 감정에 대해 누군가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인공이 퀴어라 주인공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퀴어만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이는 주인공의 이름이 ‘영’이라는 이유로 소설이 박상영의 자전적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상영이 쓴 감정은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타인에게 내 속마음을 숨겨야 하는 슬픔, 하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해 겪는 좌절감, 사랑조차도 세련되게 해야 한다는 강박감…. 박상영도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에 대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총망라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도시의 삶은 해외도 비슷해서일까. 영미권의 반응이 뜨겁다. 한국 출간 전에 이미 영국 출판사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와 출간 계약이 이뤄졌다.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는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운영하는 출판사다. 미국에서 작품이 출간된 뒤 박상영은 미국 출판전문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됐다.
지난달 10일 발표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정보라의 단편소설집 ‘저주토끼’(아작)와 함께 이 책이 포함됐다. 최종 후보는 이달 7일 발표한다. 그동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가 된 한국 작가는 한강이 유일한 만큼 출판계에서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서울의 눈부신 밤과 그 후의 흐릿한 아침을 그린 감동적인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박상영이 적어낸 감정의 밀도가 한국을 넘어 더 많은 국가의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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