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기사나 책을 통해 ‘예술로 아픔을 승화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문자로만 놓고 보면 조금 따분한 말이지요.
오늘 소개드릴 작가는 이 진부한 문장을 인생에 걸쳐 증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 대표 현대예술가 니키 드 생팔(1930~2002)인데요. 화려한 문양으로 뒤덮인 풍만한 여성상 ‘나나’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지금 롯데갤러리 본점 4층에 가면, 나나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은 판화 시리즈 ‘나나 파워’가 곳곳에 배치돼있습니다. 생기 넘치는 색과 움직임에 기분 좋은 에너지를 얻게 되는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니키가 어떻게 나나를 만들어냈는지 그 일대기를 따라가봅시다.
남들 다 그리는 ‘사랑’ 이야기가 어려웠던 작가
니키 드 생팔
1.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적학대를 당했다. 치료 목적으로 본격 미술에 입문하면서 짓눌렀던 공포와 두려움을 해소한다.
2. 초기에는 남성이나 가부장 사회를 향한 공격적인 작업을 했다. 작업하며 분노를 표출했고, 그렇게 그는 세상과 본인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둬나갔다.
3. 결혼, 사랑, 임신 등에 대한 비관은 차츰 긍정으로 바뀌어갔다. 행복한 여성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조각과 드로잉에 나타나는데, 이것이 그의 대표작이 됐다.
숨구멍이 된 미술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되었다고 느꼈다.
니키 드 생팔은 64세가 되던 1994년, 회고록 ‘나의 비밀’에서 자신의 과거를 처음 밝힙니다. 11살이 되던 해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이죠.
그는 이 사건을 오래도록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성장기를 홀로 고통 속에서 보낸 거죠. 퇴학과 전학을 되풀이하던 그는 17세에 가출했고 생계를 위해 모델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친구였던 해리 매튜스를 만납니다. 과거의 기억을 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거라는 기대로 19살이 되던 해 해리와 결혼을 하고 21세에 딸 로라를 낳았죠.
그러나 힘겹게 모른 척 해왔던 마음의 상처가 잊힐 리 없죠. 그는 깊은 우울감에 빠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등 증세가 심각해지자, 23살이 되던 해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이때 니키는 치료를 위해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는데요. 그는 그림을 통해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예술에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분노에 찬 젊은 여성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분노에 찬 많은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떠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됐다. 예술은 나의 구세주였다.
결국 니키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는데요.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장 팅겔리(1925~1991)와의 만남입니다. 스위스 출신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던 조각가 장은 당시 이미 유명한 작가였습니다. 니키와 장은 컬렉터와 작가로 처음 만났지만, 둘은 1956년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후 니키는 해리와 이혼한 후 장과 교유하면서 미술계에 전면 뛰어들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
니키의 초기작은 매우 공격적입니다. 그의 예술세계를 회고할 때 빠뜨릴 수 없는 1961년 활동을 살펴봅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던 갤러리제이에서 첫 개인전 ‘마음대로 쏴!’를 열고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작가는 관객에게 총을 주고 캔버스나 조각상을 향해 쏘라고 합니다. 남성 조각상이나 그림의 한 모퉁이에는 물감 봉지가 달려 있었는데요. 총을 맞으면 물감이 흐르면서 무작위로 뿌려지는 겁니다. 사격회화(슈팅페인트)라고 불렸죠.
사격회화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작품 ‘내 사랑의 초상화’(1961)도 시사하는 바가 명시적입니다. 넥타이를 맨 남성용 와이셔츠를 나무에 붙인 뒤 다트 핀을 던지고 물감을 쏴 만든 작품입니다. 표창을 던짐으로써 남성들을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작품이었죠.
불만을 가졌던 대상을 향해 총이나 표창을 쐈던 것은 관객에게 사회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행위기도 했지만, 작가에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쏘았다. 모든 남자들, 중요한 인물들, 나의 오빠, 사회, 학교, 수도원, 나의 가족, 나의 어머니까지. 그리고 다시 아버지와 나 자신까지도 겨누어 쏘았다.
작가는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신경쇠약을 많이 극복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거부하지 못했던 성 위계구조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으니까요.
현재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인 신부 연작(1963년)도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일침입니다. 멀리서 보면 신부가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신부 옆으로 징그럽게 붙어있는 수많은 아기 인형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는 사회에 대한 반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거죠.
눈 감을 때까지 행복한 여성을 그리다
이렇게 약 4년간 니키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내면의 멍울을 가라앉혔습니다. 이 이후로는 작업 방향이 조금 달라집니다. 과거에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기성 사회에 대한 부정을 온몸으로 표현했다면, 이때부터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을 작품 속에 드러내지요.
1966년 스웨덴 스톡홀름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살펴볼까요? 길이 28m, 폭 9m, 높이 6m. 딱 보아도 거대해 보입니다. 관람객들은 다리를 벌린 여성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그 안에는 우유 바, 천체관측대, 12석짜리 극장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태아였을 때를 상상하면서 그 공간을 누비게 되죠. 이 작품 이름은 ‘Hon’, 스웨덴어로 ‘여자’라는 뜻입니다. 여성의 성기는 성적 대상이기 이전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선 작품 ‘신부’처럼 혼인이나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이렇게 생각을 달리한 데에는 한 친구의 역할도 컸습니다. 니키는 미국 작가 래리 리버스, 그의 아내 클라리스와 친밀했던 사이였는데요. 어느 날 래리 리버스가 임신한 클라리스를 그린 드로잉을 보게 됩니다. 임신한 클라리스는 엉덩이도 크고 배도 불룩했는데 니키는 거기에서 편안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거죠. 깡마른 잡지 모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건강한 생명력, 풍부한 몸의 곡선들을 말이죠.
그래서 탄생한 형상이 ‘나나’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나나 파워(1970년)는 니키가 1965년부터 조각하고 그려온 나나를 17개의 그림 시리즈에 담은 작품입니다. 판화 곳곳에는 춤을 추며 삶을 찬미하는 듯한 행복한 여성상이 있습니다. 그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비즈실장과 대화해보았습니다.
기자 : 나나 파워는 17점의 판화로 이뤄져 있습니다. 17점을 순서대로 봐야 하는 걸까요?
실장 : 그림마다 번호가 있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보든 큰 상관은 없습니다. 대신 자세히 보시길 추천합니다. 중간중간 엉뚱해 보이는 그림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텐데요. 예를 들면 11번 그림 하단에는 ‘The Witches tea party’라는 글과 함께 두 여성이 그려져 있는데요. ‘마녀들이 차를 마신다’는 동화적 상상력이 묻어나는 그림입니다. 이런 글씨와 그림을 보면 니키가 일러스트나 디자인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기자 : 17점이 하나의 서사를 가진 건 아닌가 보네요.
실장 : 네 맞습니다. 동화책 삽화처럼 하나의 이어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각각의 판화를 뜯어보면 니키의 사랑 이야기이라는 걸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기자 : 중간에 울고 있는 여성도 있던데요. 니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실장 : 재밌는 포인트입니다. 니키의 두 번째 남편인 장 팅겔리가 나중에 다른 여성을 좋아하게 됩니다. 니키는 그림 속에 우는 여성을 그리면서 “자기야, 나랑 함께했던 밤을 기억해?” 묻죠. 또 어떤 그림은 사랑을 나누는 남녀 모습을 그렸습니다. 어찌 보면 신파 같은 그림들이라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이 묘한 감동을 줍니다. 어릴 적부터 남성들로부터 성적대상으로 취급받아와 사랑이나 성에 대한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작가가 오히려 이걸 유쾌하게 그려냈다는 건 굉장한 변화니까요.
기자 : 그래서 작품 이름이 ‘나나 파워’인 거군요.
실장 : 네. 이 작품 자체가 힘든 과거에 지지 않았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작품 속 여성은 더 이상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예쁜 여성의 모습을 띠지 않습니다.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또 찬미하는 자존감 있는 여성의 여러 모습이죠. 그래서 니키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희망을 줍니다.
나나 형상은 니키의 마지막 작품인 타로 조각 공원 조성 작업(1972~1998년)에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됩니다. 니키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이 조각 공원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마련하고 4년 뒤에 사망합니다. 눈을 감을 즈음 니키는 본인의 암울했던 유년기보다는 행복했던 근래의 기억들을 더 많이 떠올리지 않았을까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보다도 우선 자신을 위해, 자신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예술을 했던 작가는 모든 작품에 진심이었을 겁니다. 총을 쏘아대던 퍼포먼스도, 생기발랄한 나나도 말이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한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편한가요? 또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요? 저는 니키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찾아나가는 것부터가 예술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시 정보 REJOICE : Bulletproof! 2022. 2. 18 ~ 2022. 04. 25 롯데백화점 본점 4층(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81) 작품수 1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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