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그녀의 심청’에서 심청은 더는 희생당하지 않아요.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죠. 다시 쓴 고전소설에는 변화하는 사회상이 담겨 있습니다.”
신간 ‘여성의 다시 쓰기’(오월의봄)를 최근 펴낸 노지승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49·사진)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간은 고전소설 속 여성 이야기의 개작(改作) 양상을 분석했다. 노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의 고전소설을 개작한 소설, 영화, 웹툰을 분석했다.
그는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화를 맞은 캐릭터로 심청을 꼽았다. 그는 “남성 문인들이 개작한 심청전은 성폭력 피해자인 심청을 구하지 못한 남성 조력자들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1978년 발표된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대표적이다. 극중 타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한 뒤 성노예로 살아가는 심청은 아무런 힘없이 폭력에 휘둘리는 인형으로 묘사된다. 몇몇 남성이 심청을 구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심청은 끝내 눈먼 노파가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노 교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겪는 폭력을 적나라하게 비췄다는 의의가 있지만 여성 캐릭터를 극도의 폭력에 방치했다는 한계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심청은 더 이상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2017∼2019년 저스툰에 연재된 웹툰 ‘그녀의 심청’은 원작에서 심청을 위해 공양미 300석을 내주는 대신 수양딸로 삼으려 하는 승상 부인과 심청의 관계에 주목했다. 원작에선 심청이 아버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승상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웹툰에선 심청과 승상 부인이 연대한다. 노 교수는 “21세기 심청전은 단편적이던 여성 서사에 입체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힘을 합쳐 가부장사회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광복 후 남성 작가들이 개작한 춘향전은 정절을 지킨 춘향을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했다. 1930년대 여성작가 이선희는 장화홍련전에서 악녀로 등장하는 계모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노 교수는 “신여성이던 저자의 관점에서 다시 쓴 장화홍련전은 모성을 강요하는 가부장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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