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빙하의 부엉이/조너선 C 슬래트 지음·김아림 옮김/420쪽·1만8000원·책읽는수요일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분명 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거대한 몸집 사이사이 깃털이 박혀 있고 측면에 뾰족한 부리가 있다. 이것은 곰인가, 새인가. 수심 깊은 강물마저 얼어붙은 2000년 겨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숲에서 하이킹을 하던 저자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새를 만났다. 그는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 사진을 찍어 러시아 조류학자 세르게이 수르마흐에게 보냈다. 새는 100년간 어떤 과학자도 러시아 남쪽에서 관찰한 적 없는 멸종위기종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였다.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새들이 아직 숲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저자의 인생을 바꾼 첫 만남이었다. 2005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벌목이 블라디보스토크 명금류(鳴禽類·참새목에 속하는 새의 총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박사논문 주제로 5년 전 우연히 만난 새를 떠올린다. 이 책은 그가 2006년부터 5년간 진행한 ‘물고기잡이부엉이 보존 프로젝트’를 담은 탐사기다.
날개를 펼치면 2m에 이르는 물고기잡이부엉이는 1980년 무렵 멸종위기를 맞았다. 강 하류 곳곳에 댐이 건설돼 먹이인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게 됐고, 벌목으로 생의 터전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동부지역에서 1000여 마리에 이르던 개체 수는 1980년대 10분의 1로 급감했다. 이에 조류학자 수르마흐 등과 팀을 꾸린 저자는 5년간 네 차례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탐사를 떠난다. 목표는 새의 몸통에 동선을 추적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다는 것. 새들의 동선 데이터를 분석해 터전을 지키는 해법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광활한 자연에서의 여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420쪽 분량의 탐사기에서 저자가 새와 극적으로 만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만남보다 훨씬 긴 기다림이 생생히 담겼다. 탐사대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기 일쑤. 통나무와 바위가 뒤엉킨 강 하류에는 익사한 시신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성인 몸집보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거센 바람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코앞에서 놓치기를 수차례. 탐사대는 2007년 2월 먹이를 찾아 강 하류에 온 새를 포획해 립스틱 크기의 GPS 장치를 등에 다는 데 성공한다. 이후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탐사대는 러시아 일대에 물고기잡이부엉이 735쌍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의 동선을 바탕으로 서식 분포도도 그렸다. 그 결과 수백 쌍의 물고기잡이부엉이가 사는 서식지의 절반가량이 벌목 회사가 임대한 지역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벌목을 중단시켜야 할까. 고민 끝에 저자는 부엉이와 지역경제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벌목 회사와 협의해 물고기잡이부엉이가 둥지로 삼는 황철나무와 난티나무를 베지 않기로 합의한 것. 벌목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지역민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새의 터전을 지켜낸 합리적인 해법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8년 다시 숲을 찾은 저자는 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휩쓴 태풍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물고기잡이부엉이 한 마리를 만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꿋꿋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를 보며 자연의 자생력에 감탄하는 저자의 모습이 5년의 힘겨운 여정과 겹쳐 감동으로 다가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