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2년 차 때 말기 신부전 환자의 심정지가 발생했다. 당직 중이던 전공의들은 중환자실로 모여들었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담당하는 박중철 임상조교수(47)도 그중 하나였다. 그를 포함한 전공의들은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40분간 지속된 심장 마사지에 흉곽은 주저앉았고, 압박할 때마다 입에 꽂혀 있는 호흡관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결국 환자에게는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다음 날 비참하게 망가져 있는 아내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환자의 남편은 “사람을 이렇게 끔찍한 몰골로 죽게 만들었어야 했느냐”며 울부짖었다.
박 교수는 1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이후 의학의 목표가 과연 사람의 행복인지, 기술의 실현인지 혼란이 생겼다”고 했다. 5일 출간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홍익출판미디어그룹)는 그가 20여 년간 환자들의 죽음을 보며 느낀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현실, 그 과정에서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가 고통 받는 시간이 늘어나는 비인간성을 지적했다.
현행법상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는 뇌사 판정 후 장기기증을 결정했거나, 임종 과정에 들어섰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임종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다. 임종 과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어려워 대부분 의료진은 의료과실에 대한 처벌을 우려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환자를 살린다. 박 교수는 “생존했을 때 더 큰 고통과 비극에 처한다면 그 생존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혈압이 떨어지면 앞뒤 따지지 않고 승압제를 사용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인공호흡기를 다는 사건 대응적인 의학은 환자의 행복에 기여할 수 없고, 심지어 삶을 망가뜨리는 해로운 의학”이라고 지적했다.
환자가 고통스러워도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가 생명 가치만을 절대 추앙하는 ‘생의 전체화’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학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매체는 중증환자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는 의사들을 영웅으로 그립니다. 의대 교육도 죽음과 맞서는 전사들을 양성해내고 있고요. 생명 가치에만 집착하면 환자도 죽음을 재앙으로 생각하고 마지막까지 의학의 힘을 빌려 싸우게 됩니다. 의사들도 이길 수 없는 싸움에 함께하며 비극을 만듭니다.”
그가 그리는 ‘친절한 죽음’은 무엇일까. 그는 의료진이 객관적 의료지침에 충실한 것만이 의학적 최선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환자의 삶의 맥락과 가치관, 나아가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서사적 생명윤리’가 필요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렵고 떨릴 때 가족과 의료인이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문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