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펴낸 정호승 시인
‘흙 부처상 깨지면 어떡하나’ 등 생각 꼬리 물다 탄생한 詩들
쉽게 전달하는 법 고민의 산물
시인들만 읽는다는 요즘 詩, 모두가 사랑하는 詩 썼으면
2000년 정호승 시인(72)은 여행으로 떠난 부처의 탄생지 네팔 룸비니에서 작은 흙 부처상을 샀다. 흙먼지가 부는 길 한가운데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팔던 부처상이었다. 그는 부처상을 한국에 가져와 애지중지했다. 금속이 아닌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탄생한 게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2004년·창비)에 담긴 시 ‘산산조각’이다. ‘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시구에는 삶의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이자는 가르침이 녹아 있다.
15일 출간된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시공사)에서는 이 시가 우화소설 ‘룸비니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났다. 12일 만난 정 시인은 “우화소설에선 부처상이 화자가 돼 한낱 순례 기념품인 자신을 부처라고 믿는 중년 남성을 바라본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처상은 나락에 떨어진 중년 남성에게 희망을 북돋아주는 부처님이 돼 간다”고 말했다. “1972년 등단 후 시인으로 50년간 활동하며 우화소설집을 펴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에 담긴 서사를 촘촘한 그물망으로 건져 올려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우화를 선택했죠.”
신작에는 17편의 우화소설이 담겼다. 주인공은 모두 인간의 눈으로 보면 하찮은 것들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나를 더럽히고 내 살을 헐어서 남을 깨끗하게 해준다”(소설 ‘걸레’)고 생각한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크게 깨닫게 되는 날”(소설 ‘숫돌’)이 올 때까지 자기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영국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은 우화소설 ‘동물농장’으로 공산주의의 모순을 지적했다”며 “우화소설은 시의 마음과 산문의 깊이를 함께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작에는 그의 경험과 종교적 성찰이 짙게 묻어 있다. 성철 스님(1912∼1993)의 다비식을 본 뒤 그 풍경을 그린 시 ‘새’는 우화소설 ‘참나무 이야기’로 만들어져 겸허함의 가치를 전한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선종 이후 쓴 시 ‘명동성당’은 우화소설 ‘추기경의 손’으로 재탄생해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은유’로 경전을 쓴 시인이라고 생각해 가톨릭 신자지만 절에 가면 삼배(三拜)를 한다”며 “작업실 책상 위에 십자고상(十字苦像·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수난을 새긴 형상)과 불상이 함께 놓여 있다”고 했다.
1972년 동시, 1973년 시, 1982년 소설로 신춘문예에 세 번이나 당선된 그의 내공 덕일까. 평소 정제된 서정시로 사랑과 외로움을 노래하는 그의 단아한 문장은 신작에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노래했기 때문일 테다. 현학적으로 쓰인 ‘요즘 시’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시는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라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한 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독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시들이 너무 많아 염려돼요. 시인들만 읽는 시를 넘어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를 쓰는 젊은 작가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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