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신성한 의미를 강조하고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가장 처음 한 건축행위가 바로 기둥을 세우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큰 돌을 세우는 고대 문명들 생각해보세요. 스톤헨지가 어찌 보면 기둥 모음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둥의 효과를 사람들은 일찌감치 간파했습니다… 기둥을 줄지어 세우면, 이게 아주 강한 ‘포스’를 내뿜는다는 겁니다. 줄지어선 기둥을 ‘열주’라고 하는데, 이 열주가 폼 잡는 데는 최강이란 것이죠. 그래서 전 세계 옛 왕조들은 줄기둥 건축으로 위엄을 세웠습니다…”
- 건축전문기자 고 구본준의 블로그에서
▽열주(列柱·Colonnade)는 권력을 상징합니다. 인류 문명 초기에 계단이 그 역할을 했다면 건축기법이 향상되면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열주가 권위적인 건축의 대표였습니다. 기둥이 많다는 것은 건축이 그만큼 웅장하다는 뜻이니까요.
열주를 세울 만큼의 큰 권력이 없던 지방 귀족이나 성직자는 자신들의 성과 교회에 열주의 ‘미니 버전’인 회랑(回廊·corridor)을 쳤습니다.
▽웅장한 기둥들이 규칙적으로 줄 지어 서 있는 큰 공간에 있으면 위엄에 눌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공간을 촐싹대며 걸었다가는 당장 ‘이 놈!’하고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서소문역사박물관 지하입니다. 이 곳은 순교한 옛 카톨릭 신도들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밝고 흰 산뜻한 인테리어임에도 장엄한 종교적 신성에 몸가짐을 조심하게 됩니다. 구조가 열주와 아치를 활용한 중세시대 지하무덤 같은 모양새라 그런 것 같습니다. 열주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명상을 하거나 기도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한국인이 일상에서 열주를 경험하기 좋은 공간이 있습니다. 다리 아래입니다. 물론 열주가 아니라 교각(橋脚)이 나열된 곳인데요, 비록 콘크리트지만 웅장하게 일정한 간격인데다 상판이 지붕의 역할을 하니 큰 건축물의 위용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강물과까지 잔잔하게 흘러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기도하고 명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입니다.
하지만 건축적인 의미와는 별개로, 한국인 대부분은 이 공간을 평안한 휴식과 피서의 공간으로 누립니다. 진정한 해학의 민족은 권위 따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죠. 장엄하고 신성한 공간에서 눕고 먹고 마시며 강바람을 만끽하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다리 밑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을뿐더러 누구나 자유롭게 소비할 자격이 있는 공간이잖아요.
▽권위는 딱히 없는데도 열주가 사용되는 공간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건축 디자인만 보면, 결코 국민의 대표 회의체인 민의의 전당이 아닙니다. 군림하고픈 권력욕망이 넘실대는 공간입니다. 열주 위에 정체불명의 돔까지 얹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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