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김현곤-윤권영 연구원
53년만에 개량 국악기 전시 열려
내달 15일까지 서울 국악박물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내 국악박물관 3층. 길이 3m에 달하는 초대형 나발이 시야를 압도했다. 이날 개막한 국악기 개량 60년 회고전 ‘변화와 확장의 꿈’(다음 달 15일까지·무료)의 간판 작품. 25현 가야금, 9현 아쟁 등 40여 점의 전시물이 해양 생물이라면 저것은 거대한 흰수염고래쯤 되는 위용이다.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넉넉한 인상의 노인이 있었다. 한때 전설의 바다를 누비다 은퇴한 선장처럼 보이는 그는 현역. 중요무형문화재 42호 악기장 보유자 김현곤 씨(87)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대취타를 위해 의뢰 받아 제가 특수제작을 했죠. 황동에 코팅을 입힌 5개의 관을 곡선 형태로 이어 붙였습니다. 여기 이 고리에 줄을 걸어 두 명이 어깨에 메야 했으니 연주에 총 3명이 필요한 악기였지요. 허허.”
김 악기장은 국악기 개량의 살아있는 역사다. 고교 시절부터 악기사에 근무하며 미군 부대에서 버리는 바이올린, 클라리넷 등을 수리했다. 손수 악기사를 차린 뒤 한때 양악기에 천착했지만 1980년대 초 국립국악원 의뢰로 우리 편종과 편경 복원에 착수하며 국악기에 투신했다.
이번 특별전은 1969년 이후 53년 만에 열리는 개량 국악기 전문 전시다. 60년에 달하는 국악기 개량의 역사를 악기, 해설 비디오, 연주 체험으로 일별할 수 있다.
상용화에는 실패했지만 발상이 신선한 다양한 개량 악기도 볼거리. 초대형 나발 못잖게 눈길 끄는 작품이 음량 조절 장구다. 궁편과 채편 사이에 밸브 모양의 칸막이를 설치해 다이얼만 돌리면 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김 악기장의 발명품이다.
“자연음향을 살린 국악 홀이 느는 추세 속에 음량 조절이 늘 화두였는데, 재작년 국악원 수장고에서 이 작품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윤권영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 연구원(43)의 말이다. 그는 나이 차 44년을 극복한 김 악기장의 ‘영혼의 파트너’. 악기 연구와 개량 사업을 위해 지난 10년간 국내는 물론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함께 누볐다. 국악원과 김 악기장은 베트남 전쟁 때 소실돼 근 40년간 연주되지 못한 베트남 편종, 편경을 복원해 베트남 왕실에 기증하기도 했다.
“최근 국악기 개량의 또 다른 화두는 중음역에 몰려 있는 국악관현악의 음폭 확장입니다. 저음 표현을 위해 콘트라베이스와 첼로를 ‘용병’으로 쓰지만 향후 저음 아쟁 등을 개발해 이를 대체하는 게 목표죠.”(윤 연구원)
특정한 소리를 내려면 결국 양악기의 구조를 따라가게 되는데 그럴 때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다운 것’이냐는 철학적, 인류학적인 문제가 대두되게 마련이다.
김 악기장은 “1980년대 국악기 개량 당시부터 수많은 논쟁과 난관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가 젊은 연구자에게 건네는 조언은 당신의 평생을 건 신념이기도 하다.
“개량이란 원래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학궤범에 따라 크기와 개수가 제한된 편종의 한계를, 여론이 허한다면 크게 넓혀보는 게 저의 남은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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