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진부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 본 한국의 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3일 03시 00분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안톤 숄츠 지음/272쪽·1만3000원·문학수첩

이른 아침 집을 나섰는데 평소와 달리 거리가 조용하다. 정적을 가르고 학생 한 명을 태운 경찰 오토바이가 질주한다. 학생의 얼굴은 순수해 보이는데 무슨 잘못을 저질러 저런 식으로까지 연행되는 걸까. 이상하다 싶었는데 사실 이날은 수능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한국인은 누구나 아는 이 이야기가 독일인에겐 낯설고 신기하다.

‘외국인이 본 한국’이라는 주제는 진부하지만 재밌다. 미국인이 한국의 문화 역량을 치켜세우는 인문학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년·21세기북스), 일본인이 한국인 특유의 도덕주의를 철학적으로 비평하는 인문학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2017년·모시는사람들)가 이 분야 대표작이다. 독일 공영방송 ARD 프로듀서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독일인 저자는 기자의 문제의식과 프로듀서의 감각으로 20년 한국 생활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않은가? 집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으로 여기고, 높은 교육열로 어린이를 집에 가두고, 정치에서는 반대편을 끝장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텐데, 재미는 바로 그 피상적인 관찰에서 나온다. 저자는 “40, 50대 여성이 여전히 어린 소녀처럼 말하고 나이 든 남자들이 노래방이나 술자리에서 부모 눈 밖에 벗어난 10대들 같은 말투로 말한다”고 설명한다. 매력적이기도, 이상하기도 한 한국 중년층의 유아적 모습은 어린 시절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까닭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비슷한 광경을 보며 비슷하게 늙어가는 처지여서 웃을 때가 아님을 느낀다.

저자는 1994년 방한한 이래 ‘우리는 한(恨)의 민족입니다’라는 설명을 많이도 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한은 역사 발전의 동력인 동시에 자기 연민이자 피해 의식이라고 비판한다. 지금 청년 세대는 자신들이 생존 경쟁 시대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한을 물려받는다. 이런 이야기에 식자(識者)들은 복잡한 구조적 문제를 해명할 텐데 그는 그런 인식으로는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걱정할 따름이다. 저자는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며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고 제안한다.

한국 저자들은 깊이를 추구하면서 정작 표면에 드러난 문제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출판에서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정확한 언어로 지면에 올리는 일이 전부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단행본에서는 자신이 겪은 사례를 서술하는 서문에, 학술논문에서는 선행 연구를 평가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남의 이름을 언급하고 내 솔직한 생각을 쓰기란 까다롭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회피하면 동료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과제를 너무 크게 설정하는 막막함으로 이어진다. 골방에 고립되어 괴로워하는 젊은 연구자들과 이런 방법론을 나누고 싶다.

#이방인#독일인 기자#외국인이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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