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와 박찬욱 감독은 동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개인적 복수를 다뤘다. 사마천이 쓴 ‘자객열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형가(荊軻)는 타인을 위해 복수에 나섰다. 도연명(陶淵明·365?∼427)은 이 사건에 주목해 다음 시를 썼다.
시는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丹)을 위해 진나라 왕 영정(영政·후일의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일을 읊는다. 형가는 역수(易水) 가에서 전송을 받으며 떠났다. “바람결 쓸쓸해라 역수 물 차가운데, 장사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易水歌’)란 노래를 부르자 전송객 모두 비장해졌다.
거사를 위해 형가는 진시황을 배신하고 망명한 번오기(樊於期) 장군의 목과 비옥한 연나라의 땅을 그린 지도를 미끼로 삼았다. 형가는 지도 속에 감춘 비수를 꺼내 휘둘렀지만 진시황의 옷소매만 잘랐을 뿐 진시황과 신하들의 칼에 죽음을 맞는다. 형가는 단순한 킬러가 아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신의를 지킨 협객이었다. 시인은 형가의 서툰 검술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대의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의기를 기렸다.
천카이거 감독의 ‘시황제 암살’(1998년)도 이를 다뤘다. 영화에서도 형가가 지도에 감춘 칼을 꺼내 휘두르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다. 시인이 형가에게 감정을 이입한 데 비해 영화는 진시황과 형가의 입장에서 각각 사건을 조명한다. 형가의 죽음 후 홀로 남은 진시황 역시 고독한 권력자로서 연민의 대상이 된다.
도연명 이전에도 여러 시인이 형가에 대해 읊었지만, 이 시처럼 형가의 복수에 공명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당시 왕위를 찬탈하고 집권한 유유(劉裕)에 대한 시인의 복수심을 담았다는 해석도 있다. 은사(隱士·벼슬에서 물러나 숨어 사는 선비)로 알려진 시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朱子語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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