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버린 엄마, 詩 속에 묻은 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9일 03시 00분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김혜순 시인 14번째 시집 펴내

딸에게 엄마는 지구 같은 존재다. 딸은 지구 주위를 빙빙 도는 달처럼 엄마 곁을 맴돈다. 시인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죽는다면 딸은 누구를 맴돌아야 할까.

최근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김혜순 시인(67·사진)은 28일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9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간호하면서 앰뷸런스를 참 많이도 탔다”며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며 시를 썼다”고 했다.

“제 엄마라고 다른 분들에 비해 특별하겠습니까. 다만 엄마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보면서 저 스스로 산고(産苦)를 느끼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내게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도 줬죠.”

김 시인이 시집을 펴낸 건 2019년 3월 ‘날개 환상통’(문학과지성사) 이후 3년 1개월 만이다. 그는 시집 ‘죽음의 자서전’(2016년·문학실험실)으로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을 수상했다. 지난해 12월엔 스웨덴 시카다상, 이달 6일 삼성호암상을 받았다. 40여 년간 큰 성취를 쌓아온 그가 엄마로 시를 쓴 건 처음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응급실에 3번이나 실려 갔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 시인은 “이 시는 엄마에 관해서, 엄마에 대해서 쓴 것이 아니다”라며 “사라지고 있는 엄마와 함께 시 한 편 한 편을 생성해 나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 한다.”(시 ‘체세포복제배아’ 중)고 고백한다. “산호 때문에 울어보기는 처음이다. 엉엉엉 운다. 산호는 죽기 전에 병상의 엄마처럼 백화한다.”(시 ‘더러운 흼’ 중)고 말한다. 시에서 비탄의 정서가 깊게 묻어나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단란한 가족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 헤어질 작별의 공동체가 걸어간다고 생각한다”며 “시는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예술이 아니다. 불행을 불행답게, 슬픔을 슬픔답게 하는 게 시”라고 했다.

고통 끝에 그가 도착한 곳은 사막이다. 그는 “나는 지금 모래 한 알 한 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자라는 사막에서//우리는 부재로 가득 차 세상을 살아”(시 ‘모래의 머리카락’ 중)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각자의 사막으로/떠나갈 일만 남았는가”(시 ‘눈물의 해변’ 중)라고 묻는다. 왜 사막이냐고 묻자 그는 망설이다 답했다.

“엄마와 저의 시간이 만든 나날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곳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저는 환상의 자리인 그곳을 사막이라고 부릅니다. 엄마와의 시간과 나날이 있는 그곳을요. 저는 늘 사막에 있었습니다.”

#김혜순 시인#14번째 시집#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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