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춘향가’라 하면 보통 춘향과 몽룡 먼저 떠올린다. 사랑가, 십장가, 옥중가, 이별가…. 절절한 창(唱)의 주인은 대부분 두 연인의 몫. 하지만 주야장천 애틋한 사랑과 이별 만 노래하면 금세 지루해지지 않을까. 중간중간 웃음과 유희를 불어넣는 방자와 향단이 춘향과 몽룡만큼 필요한 이유다.
4일 개막하는 창극 ‘춘향’에서 방자와 향단을 각각 맡은 국립창극단의 유태평양(30)과 조유아(35)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지난달 28일 만났다. 두 소리꾼이 연기하는 방자와 향단은 소리와 캐릭터, 존재감만큼은 춘향과 몽룡을 압도한다.
“춘향 몽룡의 사랑 이야기에 묻혀서 그렇지 방자와 향단은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로 자라 서로 티격태격하며 ‘썸’ 타는 사이일 거예요. 서로 좋아하는 걸 동네 사람 다 아는데 둘만 모르는 그런 커플요.”(조유아)
‘춘향과 몽룡’처럼 ‘방자와 향단’도 입에 붙는 조합이지만 창극 ‘춘향’에 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리는 아직 없다. 다만 극 후반부, 두 사람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유명한 사랑가를 살짝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대본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공연하면서 저희끼리 나름대로 방자와 향단의 러브라인을 만들게 됐어요. 대놓고 연애까진 아니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진 않는 그런 커플요.”(유태평양)
두 소리꾼이 연기하는 방자와 향단은 어느 배역보다 희극적이다. 유쾌하고 밝으며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호감형 캐릭터. 눈만 마주쳐도 호쾌하게 깔깔 웃어버리는 실제 두 사람처럼 말이다.
“고등학생 때 예술제에서 딱 한 번 춘향 역을 한 적이 있어요. 분장을 하고 무대에 딱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이 다 웃더라고요. 아무리 진지한 역할을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웃어버려요. 근데 전 무대에서 관객들 웃는 얼굴을 보는 게 훨씬 좋더라고요.”(조유아)
“초등학교 5학년 때 쑥대머리 가발 쓰고 춘향도 해봤어요. 몇 년 전엔 몽룡도 해봤고요. 근데 전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안 해본 배역은 다 궁금해요. 변학도 역도 탐납니다.”(유태평양)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경력이 있는 두 사람. 또래처럼 우리 전통보다는 대중문화가 익숙할 법하지만 여름만 되면 산에 가서 소리 공부를 하는 천생 소리꾼이다. 6세에 ‘흥보가’를 완창해 판소리 신동으로 통했던 유태평양은 2012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금상 수상 뒤 201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주요 배역을 도맡아 왔다. 진도 엿타령으로 유명한 박색구의 손녀이자 전남도 무형문화재 조오환의 딸인 조유아 역시 2010년 임방울 국악제 일반부 대상 출신이다.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도 좋죠. 그런데 3∼4시간 동안 땀을 빼면서 소리할 때, 나를 보는 저 사람들이 문을 박차고 나갈까 안 나갈까 궁금하거든요. 완창하고 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그때 오는 희열은 잊히지가 않아요.”(유태평양)
“창극 배우로서의 삶이 훨씬 만족스러워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바로 받는 감동이 아직은 너무 좋아요. 물론 TV에서 창극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마음이 소리할 때만큼 움직이진 않네요.”(조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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