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통도사 미스터리
전쟁 때 통도사에 육군병원 설치… 1951년 상이병 3000여 명 치료
복장유물 안에서 당시 기록 나와
통도사 대광명전의 낙서. 동아일보DB
영축총림 통도사가 현충시설로 지정되기까지 흥미로운 과정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사찰 주변의 미스터리가 스님과 관련자들의 노력에 의해 차례로 풀렸다.
경내 대광명전 벽면에는 “가노라 通度寺(통도사)야 잘 있거라 戰友(전우)들아, 情(정)든 通度(통도)를 두고 떠나랴고 하려마는, 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 “停戰(정전)이 웬말?” 등의 문구뿐 아니라 탱크와 트럭, 아이 얼굴 등 사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낙서들이 발견돼 사찰 소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곳의 낙서가 남아 있는 것은 다른 전각과 달리 개·보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실마리는 2019년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대의 고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구하 스님(1872∼1965)이 붓글씨로 쓴 연기문(緣起文)이 나온 것. 이 기록에는 불상과 전각 조성 과정뿐 아니라 당시 상황이 언급돼 있는데, 국군 상이병 3000여 명이 입사(入寺)해 퇴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6·25전쟁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재가 열리는 용화전 내부. 동아일보DB연기문이 나오자 육군병원 분원 설치를 확인하는 작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관련자들의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분원을 운영한 제31육군병원(육군정양병원)은 1950년 12월 대전에서 창설한 부대였다. 정양원(靜養院)은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부상병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이 병원은 1951년 1·4후퇴 뒤 부산으로 옮겨 운영됐으며 부상병이 증가하자 지리적으로 가까운 통도사와 부산 범어사에 분원을 설치했다.
한편 통도사는 6·25전쟁 참전 영령 위령재 중 용화전 미륵옥불 점안행사에 대해 “호국영령들을 위로하고 내세에 중생을 구제할 미륵불로 오시기를 발원하는 의미를 담아 미륵옥불을 조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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