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찾은 시민들 “환상의 세계같은 경치” “바깥세상 알기 어려울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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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첫날]
74년만에 열린 靑… “TV서나 보던 곳인데”
개방 첫날 시민 2만2354명 관람, ‘구중궁궐’ 관저 정문도 활짝

10일 오전 청와대 정문이 열리자 사전 신청에서 당첨된 시민들이 일제히 입장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0일 오전 청와대 정문이 열리자 사전 신청에서 당첨된 시민들이 일제히 입장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청와대를 다 와보고….”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한민국 수립 이후 처음 청와대가 전면 개방돼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남편 서재석 씨(80)의 손을 꼭 잡고 청와대 본관으로 향하던 노미옥 씨(77)는 “TV에서나 보던 청와대에 직접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부축하던 서 씨는 “복권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쁘다”며 웃었다.

권위주의 시절은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권력의 정점을 상징하며 74년 동안 일반인들에게 굳게 닫혀 있던 청와대 정문은 이날 오전 11시 37분 국민을 향해 활짝 열렸다. 사전 신청에서 당첨돼 1회 차 입장을 기다리던 시민 6500여 명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닫혀 있던 세월을 상징하는 국민대표 74명은 손에 매화를 들었다. 매화는 윤 대통령이 봄이 가기 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한 약속의 실천을 뜻한다.

전날까지 대통령이 거주했던 관저도 정문인 ‘인수문(仁壽門)’을 개방했다. 전면 개방 전에도 청와대 관람 코스가 있었지만 관저 주변은 특히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구중궁궐의 핵심’이었다. 이날 총 2만2354명이 청와대를 관람했다.



74년만에 靑전면 개방 첫날
120여종 나무 심겨진 ‘녹지원’ 인기, 관저 정문이었던 ‘인수문’도 활짝
담벼락 너머 서울 도심 풍경 펼쳐져… 21일까지 다양한 문화행사 개최
보안 분류됐던 靑지도 온라인 공개


드론으로 촬영한 청와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만에 청와대가 전면 개방된 10일 드론으로 촬영한 청와대 경내와 시민들의 모습. 이락균 채널A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청와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만에 청와대가 전면 개방된 10일 드론으로 촬영한 청와대 경내와 시민들의 모습. 이락균 채널A 기자
“역사적인 날이잖아요.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 대신 왔어요.”

10일 오전 11시 50분경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앞. 주부 최민혜 씨(46·서울 강남구)는 아들 오주한 군(12), 딸 유진 양(10)과 청와대에 왔다. 초등학교에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냈다. 오 군은 청와대 본관 지붕의 기와를 가리키며 “지붕이 진짜로 파랗다. 책에서 보던 청와대에 와보니 신기하다”며 웃었다. 최 씨는 “역사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게 공부”라며 “다음에 건물 내부까지 공개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또 올 것”이라고 말했다.

7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는 2시간 단위로 6500명씩 하루 총 6번, 모두 3만9000명이 관람할 수 있다. 진입이 차단됐던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길목도 열려 관저 뒤편 산책로의 문화유산과 건축물도 볼 수 있게 됐다. 이날 대통령 관저의 정문 ‘인수문(仁壽門)’이 활짝 열렸고, 대통령 관저 앞 정원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일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관람객들은 북악산 정남향에 있는 본관뿐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를 포함해 120여 종의 나무가 있는 녹지원을 따라 청와대를 자유롭게 거닐었다. 대통령 관저 앞마당의 담벼락 너머로 남산타워를 비롯해 서울 도심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현모 씨(64·경기 하남시)는 “등산을 다녀 봐도 서울 도심에 이렇게 좋은 터는 흔치 않다. 동네에서 장사하는 내게는 환상의 세계 같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권력자들만 누렸다는 게 더 실감 난다”고 했다.

딸, 사위와 함께 온 이은재 씨(87·서울 서초구)는 “우리네 사는 세상 같지가 않고 꼭 깊은 산속 사찰 같다”고 했다. 본관에서 도보로 5분가량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 대통령 관저를 본 이 씨는 “조용하게 수행하기는 좋지만 대통령이 여기 살면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관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오운정(五雲亭)에 오르면 청와내 경내가 내려다보인다. 홍성갑 씨(66·서울 강북구)는 오운정에 올라 “권력자들이 왜 그렇게 독재를 하고 욕심을 냈는지 이제야 알겠다. 자연이며 경치며 빠지는 게 없는 이 자리를 누군들 손에서 놓으려 하겠냐. 나 같아도 한번 들어오면 안 나가고 싶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6시 반경 청와대 개방을 기념해 춘추관 앞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문정희 시인이 창작시 ‘여기 길 하나가 일어서고 있다’를 낭독했다. “여기 길 하나가 푸르게 일어서고 있다//역사의 소용돌이를 지켜본/우리들의 그리움 하나가/우리들의 소슬한 자유 하나가/상징처럼 돌아와/다시 길이 되어 일어서고 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21일까지 청와대 경내에서 문화행사를 선보인다. 국빈을 맞이하던 영빈관에서는 최고의 무사를 뽑는 공연이, 춘추관 앞에서는 줄타기 등 전통놀이가 각각 열린다. 임금의 산책을 재현한 행사도 개최한다.

다만 각 건물을 소개해 주는 안내판이 없어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통령 관저를 보던 최현민 씨(45·서울 마포구)는 “주변 사람들이 말해 주기 전까지 대통령 관저인 줄 몰랐다”며 “건축물의 이름과 의미를 설명한 안내판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보안 지역으로 분류돼 공개되지 않았던 청와대 주변 지도도 인터넷에 공개됐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청와대 주변 지도를 국가 공간 정보 플랫폼 브이월드에 공개했고 이후 네이버, 카카오 등 민간 기업에도 제공한다고 밝혔다.

#청와대#74년만에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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