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드라콘’을 비롯해 세계 각국 신화에는 단골손님처럼 용이 등장한다. 신화 속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용 하면 거대한 몸집과 온몸을 뒤덮은 큰 비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 상공에서 위용을 뽐내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나만의 용’을 만드는 레시피를 제시한다. ‘나만의 파스타’ 만드는 법을 알려주듯 가볍게 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세포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그는 말한다. “용이 꼭 갖고 싶으니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현재의 과학기술로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총동원된다. 코모도는 현존하는 가장 큰 도마뱀. 그런 만큼 크고 무시무시한 용을 만들기 위한 시작점이 될 동물로 소개한다. 평균 몸무게 80kg, 최대 166kg에 달하는 코모도를 날게 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려면 코모도 뼈를 가볍게 하거나 근육계를 간결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유전자를 편집하는 등 유전자에 손을 대야 한다.
용이 불을 뿜게 하려면 연료가 필요하다. 메탄가스를 많이 생산하는 소의 특수한 소화관 반추위(反芻胃)를 용에게 적용해 용이 메탄가스를 만들어 내는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을 따를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지능을 가진 용의 뇌를 만들기 위해 특정 유전자군을 조작하거나 뇌 줄기세포를 제거하는 아이디어도 소개한다.
“대체 용을 왜 만들어?” 하는 근원적 의문이 따라다니지만 추상적인 상상을 구체적인 과학기술에 적용해 보는 과정이 흥미로워 계속 읽게 된다.
반전은 저자가 ‘용 레시피’를 소개하는 목적이 “용 만드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방법을 마구잡이로 사용해 상상 속 동물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묻고자 유전자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한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보여 주고 경각심을 갖게 한다.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이용해 원하는 DNA 부위를 정확히 자르는 유전체 교정 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며 이 기술이 무분별하게 사용됐을 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독자가 과학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재미를 주는 동시에 생명윤리에 대한 엄격한 경고장을 날리는 저자의 ‘밀당’ 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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