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화가 나카무라 쓰네(1887∼1924)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는 유년 시절 가족들을 차례로 잃어 스무 살에 혼자가 됐다. 부모는 병으로 죽었고, 러일전쟁에 참전한 큰형은 전사했으며 둘째 형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에 퍼진 결핵은 나카무라를 평생 괴롭혔다. 결핵으로 37세에 눈을 감은 그는 죽기 한 해 전 대표작 ‘두개골을 든 자화상’(1923년)을 그렸다. 미열로 두 볼이 상기된 채 아무런 저항이나 분노의 기색 없이 두개골을 든 남자. 죽음을 담담히 기다리는 이 남성은 나카무라 자신이었다.
한국 국적의 도쿄경제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앞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썼다. 이번엔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 그중 일본 근대미술에 눈을 돌렸다. 나카무라를 비롯해 책에 소개된 세키네 쇼지(1899∼1919) 등 미술가 7명은 1920∼1945년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스페인독감과 결핵으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역병과 전쟁의 시기에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정치 선전의 하수인을 자처했던 예술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위해 싸운 ‘이단아’ 7인을 소개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나카무라가 죽기 한 해 전 두개골을 든 자화상을 그렸듯, 역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근대 화가들은 일찍이 죽음을 예감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출했다. 스무 살에 결핵과 스페인독감으로 죽은 세키네는 10대 때부터 죽음에 천착했다. 19세에 그린 ‘신앙의 슬픔’(1918년)은 그가 공중변소 앞에서 본 여성 행렬의 환시(幻視)를 그린 그림이다. 여성들은 밝은색의 원피스 차림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의 행렬을 연상케 하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고독과 쓸쓸함 때문에 아무에게라도 빌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저런 여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전의를 고양하는 작품을 그리던 시류에 저항하며 예술가의 양심을 지킨 화가들도 소개한다. 아이미쓰(1907∼1946)가 대표적이다.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침략 전쟁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던 1938년, 그는 정면을 직시하는 눈알을 묘사한 ‘눈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해 “황야의 한가운데 정면을 쏘아보는, 붉게 충혈된 거대한 눈알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암시와 같다”고 설명한다. 군부에 협력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동료 화가들에게 아이미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책의 배경인 1920∼1945년은 스페인독감과 결핵이라는 역병, 그리고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진 시대였다. 전염병과 전쟁, 폭력이 지속되는 지금과 그 당시가 너무나 닮아 있기에 100년이 넘은 작품들이 던지는 생각할 거리는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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