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배우에게 배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무대 한구석에 있어도, 조명 밖에 비껴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배우들의 운명이자 숙명이죠.”(배우 박정자)
권성덕,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등 평생을 무대를 누빈 기라성 같은 연극계 원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늘 맡아오던 주인공이 아닌 조연, 단역이다. 하지만 한걸음에 달려왔다.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이해랑 연극상을 받은 원로 배우들이 뭉쳐 화제가 됐던 연극 ‘햄릿’이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주연은 젊은 배우들에게 넘겨주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박정자는 2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햄릿’ 제작발표회에서 “연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정말 행복하다”며 “이런 작품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평생을 큰 역보다 단역, 조연을 많이 했던 배우로 그 역할들의 소중함을 너무나 절감하고 있다”며 “80살이 넘다 보니 지금은 대사 외우기가 어려운데, 우선 대사가 적어서 좋다. 대신 대사가 많은 햄릿을 마음껏 응원하려고 한다”고 웃었다. 선배들은 6년 전과 달리 주연 자리에서 물러나 클로디어스부터 유령, 무덤파기, 배우1~4 등 작품 곳곳에서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한다.
여섯 번이나 ‘햄릿’을 연기한 유인촌은 햄릿을 졸업하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의미있는 작품에 다시 함께하게 됐다. 주인공을 맡았던 지난번과 달리 대척점에 있는 비정한 숙부 클로디어스 역으로 나선다. 그는 “그때 햄릿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만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에도 사실 고민했다”며 “젊은 배우들과 평생 연극 무대에 삶을 바쳐온 어른들이 모여서 한 연극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극을 이끌어갈 햄릿은 강필석이 맡는다. 그는 “감히 선생님들과 대사를 섞고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자체가 복받은 배우”라며 “6년 전 이 작품을 봤을 때 가슴이 너무 설렜다. 첫 리딩때도 박정자 선생님이 첫 대사를 하는데 심장이 너무 뛰어서 제 대사를 못하겠더라. 한없이 긴장된다”고 전했다.
이번에 다시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이번 연극의 키워드를 ‘죽음 바라보기’라고 밝혔다. 손 연출은 “지난번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만들었다면 이번엔 전 배역에 맞게 다시 캐스팅했다”며 “햄릿의 주 키워드는 죽음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프로듀서도 “선생님들이 빛나는 조연과 단역을 맡고 젊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세대를 융복합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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