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고 풍부해진 맥주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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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맥주 속속 출시

대한민국 맥주업계의 ‘국룰(국민 룰)’이던 ‘4캔=1만 원’ 공식이 깨졌다. 맥주 주재료인 맥아(보리) 등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급등하면서 2013년 편의점 수입 맥주 판매 이후 굳어진 가격 상한선이 9년 만에 조정된 것.

그간 국내 맥주 시장은 원료나 개발 과정과 무관하게 모든 제품 가격이 4캔 1만 원 공식에 묶여 있었다. 편의점 묶음 판매는 가정용 판매 채널 중에서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여기 포함되지 않으면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려웠다. 소비자들은 ‘1만 원의 행복’을 누렸지만, 맥주 시장이 와인처럼 다양한 가격과 품질로 경쟁하며 발전해 가는 데는 걸림돌이 됐다.

공고했던 가격 장벽이 깨지면서 이전에 없던 ‘틈’이 생겼다. 좀 더 높은 값을 받더라도 제대로 된 품질의 고급 맥주를 선보이려는 곳이 늘기 시작한 것이다. 주류업계는 물론이고 호텔, 편의점 업계도 ‘프리미엄 맥주 전쟁’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맥주인듯 와인인듯… 오크통 숙성으로 진하고 샴페인처럼 달콤하다


제주맥주, 고급화 전략… 2만원 숙성맥주 호평
블루보틀과 손잡고 커피맛 맥주 개발도
호텔-브루어리 협업 시그니처 맛 선보여
편의점 업계도 고급맥주로 시선

제주맥주가 프리미엄 맥주를 표방하며 선보인 ‘배럴 시리즈’. 해외 위스키 업체 및 커피브랜드 등과 손잡고 오크통(배럴)에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수개월 숙성시켰다.
제주맥주가 프리미엄 맥주를 표방하며 선보인 ‘배럴 시리즈’. 해외 위스키 업체 및 커피브랜드 등과 손잡고 오크통(배럴)에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수개월 숙성시켰다.
국내 프리미엄 맥주의 선봉은 제주맥주다. 2015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제주맥주는 기존 라거와 수입 맥주만 존재하던 시장에 에일 중심의 크래프트 맥주(수제맥주)를 선보이며 제품 다양성을 높였다. 2020년 첫선을 보인 ‘배럴시리즈’는 고급 재료, 고급 양조방식 등을 사용해 기존 맥주와는 차별화된 맛과 퀄리티를 내세웠다.

첫 작품인 ‘임페리얼 스타우트 에디션’은 220년 전통의 스코틀랜드 위스키 브랜드 하이랜드파크와 손잡고 싱글몰트 위스키 12년산 오크통(배럴)에 제주맥주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약 11개월간 숙성시킨 것이다. 한 병에 2만 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이었지만 고품질 프리미엄 맥주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 몰려들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을 통해 준비 물량 3000개가 출시 사흘 만에 소진됐다.

제주맥주가 커피브랜드 블루보틀과 협업한 ‘블루보틀커피 에디션’.
제주맥주가 커피브랜드 블루보틀과 협업한 ‘블루보틀커피 에디션’.
지난해 11월 커피브랜드 블루보틀과 협업한 ‘블루보틀커피 에디션’은 버번을 숙성시킨 배럴에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6개월 이상 숙성시키고 여기에 ‘드라이 호핑’ 기법으로 커피를 더했다. 초콜릿, 라즈베리 향미와 버번 배럴, 로스팅 몰트에서 오는 묵직한 아로마가 호평을 받았다. 750mL 한 병에 3만3000원의 고가인데도 사전예약 3일 만에 신청자가 1만1000명을 넘었다. 경쟁률은 20 대 1에 달했다. 편의점 물량 3000병은 6시간 만에 완판됐다.

제주맥주 ‘블루보틀커피 에디션’은 묵직한 풍미로 호평을 받았다.
제주맥주 ‘블루보틀커피 에디션’은 묵직한 풍미로 호평을 받았다.
‘4캔 균일가’ 맥주 시장 너머의 가능성을 본 제주맥주는 올해 프리미엄 맥주 제품군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기존 위스키, 커피 등 다른 음료 산업과의 레시피 개발을 넘어 초콜릿, 소금 등 다양한 식재료와 기호 식품을 혼합해 미식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와인 엔트리 유저를 겨냥한 ‘프루티제’ 맥주도 다음 달 안에 선보인다. 과일 퓨레를 넣은 스파클링 프루트 에일로, 750mL 샴페인 병에 소비자가는 2만 원대로 책정될 예정이다.

특히 프리미엄 맥주의 대중화를 위해 제주에서 ‘용감한 주방’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해외 브루마스터들이 개발 중인 맥주를 주변 지인들과 나눠 마시는 문화에 착안해, 소규모 양조 설비인 스몰 배치 중심으로 양조사들이 실험하는 독특한 맥주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차별화된 식음 경험을 표방하는 호텔들도 프리미엄 맥주 개발에 적극적이다. 유명 브루어리와 협업해 호텔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시그니처 맥주’를 내놓으며 고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파라다이스시티와 인천맥주가 만든 프리미엄 맥주 ‘파라다이스 시그니처 에일’.
파라다이스시티와 인천맥주가 만든 프리미엄 맥주 ‘파라다이스 시그니처 에일’.
파라다이스시티는 로컬 수제맥주 브루어리인 인천맥주와의 협업을 통해 프리미엄 맥주 ‘파라다이스 시그니처 에일’을 새로 출시했다. 지난해 말부터 6개월간 기획·개발된 이 맥주는 밀과 귀리를 사용해 갓 뽑아낸 듯한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과 풍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맥주향에 신경썼다. 파라다이스 디퓨저의 고유 향기인 시트러스향에 라임과 엘더플라워 향을 추가해 누구나 부담 없이 마시며 기분 좋은 청량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달 생맥주 형태로 먼저 선보이고 추후 병맥주(330mL)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프리미엄 맥주 ‘아트 페일 에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프리미엄 맥주 ‘아트 페일 에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2019년 ‘아트바이젠’, 2020년 ‘아트 페일 에일’ 등 프리미엄 맥주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아트바이젠은 원재료인 맥아 공급 중단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단종됐고 현재는 아트 페일 에일만 판매하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아트 페일 에일’은 한 달 평균 약 1000잔이 팔릴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아트 페일 에일’은 한 달 평균 약 1000잔이 팔릴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아트 페일 에일은 미국식 페일 에일에 오렌지필을 첨가한 향긋한 에일 맥주다. 쌉쌀한 솔향의 미국 컬럼버스 홉에 오렌지와 자몽 등 시트러스향이 풍부한 시트라 홉을 섞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생맥주(1만9000원)로 제공하고 1층 그랜드 델리에서는 알루미늄 캔(1만 원)에 포장해 판매한다. 2020년 여름 첫선을 보인 이후 한 달 평균 약 1000잔이 팔릴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는 설연휴 기간 국내 수제 맥주 전문 기업 카브루의 구미호 맥주 프리미엄 에디션 ‘구미호 루비테일’ 맥주를 판매했다. 와인 배럴에서 7개월 이상 숙성 기간을 거친 구미호 루비테일 맥주는 흑미, 후추, 생강, 오미자, 복분자 등 한국적인 재료로 만든 ‘흑미 사워’를 미국 프리미엄 와이너리 실버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켜 내추럴 와인 같은 깊은 풍미를 담아냈다.

편의점 이마트24가 300병 한정 판매한 ‘OBC 프리미엄 맥주’.
편의점 이마트24가 300병 한정 판매한 ‘OBC 프리미엄 맥주’.
각종 브랜드 콜라보로 굿즈형 맥주 판매에 치중했던 편의점 업계도 고급 맥주로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마트24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초까지 기존 수제 맥주와는 달리 오렌지필, 코리앤더 씨드 등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하고 일부는 3∼6개월 배럴 숙성 과정을 거친 ‘OBC 프리미엄 맥주’ 5종을 한정 판매했다. 한 병당 2만7000∼2만8000원의 고가에도 30병씩 준비한 초도 물량 150병이 판매 이틀만에 모두 매진됐고, 추가한 150병까지 총 300병이 4일 만에 완판됐다. 예상보다 높은 인기에 다음 달 애플리케이션 예약 구매를 통해 프리미엄 맥주 추가 판매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홈술, 혼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보다 다양한 주류를 즐기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가격보다 개인 만족도를 우선순위에 놓는 ‘나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소비)’ 트렌드와 함께 다양한 개성을 가진 프리미엄 맥주들이 더 대중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일매거진q#커버스토리#맥주#오크통 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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