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만에 정규 6집 낸 ‘빛과 소금’
“팬사인회 8할이 20대… 깜짝 놀라”
“뮤비 찍고 랩 삽입… 오랜 꿈 이뤄”
‘네모난 화면 헤치며/살며시 다가와…’(‘샴푸의 요정’ 중)
1990년 가요계에 빛과 소금은 조용한 해일처럼 덮쳐왔다. 섬세하고 지적인 화성+차갑고 세련된 편곡+어딘지 우울하며 애절한 감성. 입체파 회화처럼 기묘한 이 ‘화학식’의 미학은 마치 불가해한 도형의 꼭짓점 같았다. 주류 차트를 뒤집진 못했지만 이 작은 폭발의 여진(餘震)은 세기를 넘어 지속됐다. 2019년 R&B 가수 정기고, 2020년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혼성 듀오 도시(dosii)가 리메이크하며 빛바램 없는 고전(古典)임이 입증됐다.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히트 곡을 만드는 것? 당대의 다른 이들이 지상 과제로 골몰했던 그 일을 우리는 하지 않았던 것이 되레 긴 생명력을 갖고 재조명된 비결인 것 같아요.”(박성식, 장기호)
마침내 원전(原典)이 돌아왔다. 그룹 빛과 소금(박성식, 장기호)이 6집 ‘Here we go’를 26일 발표했다. 1996년 5집 ‘천국으로’ 이후 무려 26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멤버들은 “애당초 데뷔 30주년(2020년)을 기념하는 디지털 싱글 정도를 생각했는데 ‘레트로 시티팝이 요즘 붐이다. 젊은이들도 찾는데 왜 정규 앨범을 내지 않냐’는 주변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용음악학 교수로 근 20년 교단에 선 두 멤버에게 호기(好期)도 왔다. 장 씨는 2017년 서울예대에서 퇴직했다. 박 씨(호서대)는 20년 만에 쓰게 된 안식년(내년 2월까지)을 오롯이 빛과 소금 재결합에 헌납하기로 했다.
“2019년 서울레코드페어 때 저희 1집 LP 재발매 기념 팬 사인회를 열었죠. 사인을 기다리는 긴 줄에 20대 젊은이들이 팔 할이어서 깜짝 놀랐어요.”(장기호)
10개의 유려한 신곡으로 신작을 꽉 채웠다. 첫 곡 ‘Blue Sky’부터 거침없다. 순풍 만난 거함(巨艦) 같다. 교묘하고 세련된 화성과 선율로 푸른 청량감의 돛을 활짝 펼친다.
“2017년 제가 낸 화성학 책 ‘나는 모드로 작곡한다’의 예제 곡 하나를 발전시켰습니다. 행복감을 주는 아이오니언(Ionian) 모드(mode·음의 배열법)를 썼죠.”(장기호)
이 곡은 뮤직비디오(QR코드)로도 제작했다. 데뷔 후 한 번도 찍어본 적 없는, 첫 뮤직비디오다. 빛과 소금 사상 최초로 랩을 본격 삽입한 곡 ‘오늘까지만’도 신작의 일부. 젊은 래퍼 서출구를 참여시켰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로 활동하다 탈퇴한 뒤 (미국 프로듀서) 퀸시 존스의 ‘Back on the Block’(1989년)을 듣게 됐어요. 언젠가는 나도 멋진 랩을 노래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랜 꿈이 이뤄졌네요.”(박성식)
박 씨와 장 씨는 한때 봄여름가을겨울, 사랑과 평화의 멤버였다. 김현철, 고 김현식 유재하 등과 어깨를 걸고 당대 대중음악을 혁신한 ‘뉴 웨이브’ 집단의 핵이었다. ‘빛과 소금만 빼고 다들 (대중적으로) 잘된 것 같다’고 하자 박 씨가 조용히 테이블 위의 커피 잔을 들었다.
“빛을 받은 잔 밑에 생긴 그림자를 봐주세요. 빛이나 소금은 너무 당연해 그 존재를 잊기 쉽지만 삶에 꼭 필요하죠. 우리도 그런 팀이었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우리, 그렇게 활동하고 싶어요. 빛과 그림자처럼 둘이 붙어 다니며 70대, 80대가 될 때까지요.”(박성식)
“그리워하시던 좋은 음악, 다시 들려드릴 거예요. 앨범 제목 보이시죠? ‘Here we go’(다시 시작해보자!)”(장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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